[수도권/문화&사람]<25>가천박물관 이길여 회장

  • 입력 2008년 5월 12일 03시 07분


이길여 회장(오른쪽)이 11일 인천 연수구 옥련동 가천박물관을 찾은 어린이들에게 조선시대에 사용하던 약탕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 가천길재단
이길여 회장(오른쪽)이 11일 인천 연수구 옥련동 가천박물관을 찾은 어린이들에게 조선시대에 사용하던 약탕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 가천길재단
인술 베풀던 선조들의 흔적 ‘생생’

《인천 연수구 옥련동 청량산 자락에 자리한 가천박물관은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의료사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의료인이자 교육가인 가천길재단 이길여 회장이 1995년 사비를 털어 만들었다.

그가 박물관을 세우게 된 동기는 바느질 솜씨가 좋았던 어머니 때문이었다.

그는 “어머니는 버선이나 골무, 귀주머니 같은 생활필수품은 대부분 손수 만들어 쓰셨는데 그것이 바로 한국을 대표하는 공예품이었다”며 “언젠가 전통을 계승하는 박물관을 설립하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 30년 가까이 의료유물 모아

1957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과 일본에서 유학한 뒤 인천에서 의료 활동을 시작한 이 회장은 1970년부터 전국을 돌며 전통 공예품을 수집했다.

한 번은 50대 중반의 남자가 이 회장을 찾아와 “어려운 가정살림에 보태기 위해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유물을 팔려고 하는데 전시회를 열어 달라”고 요청해 고서(古書) 전시회를 열어줬다. 그러나 고서를 구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상의 지혜와 얼이 담긴 문화유산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웠어요. 또 생활이 어렵다는데 고서를 다시 가져가라고 할 수도 없어 몇 가마니 분량의 고서와 골동품을 모두 사들였습니다.”

뜻밖에도 고서 중에는 국보(제276호)인 ‘초조본 유가사지론(初雕本 瑜伽師地論)’이 있었다. 이 책은 고려시대 거란의 침입을 물리치려고 한 조상들의 호국정신이 담긴 불교문화재로, 대장경의 초판 격이다.

1980년 의료사 전문 박물관을 짓겠다고 결심한 이 회장은 조상들이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의료 유물을 모으기 시작했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등 전국을 돌며 조선시대 약탕기와 약통 침통 약장 등을 수집했다.

1399년 조선에 자생하는 약초를 집대성하기 위해 발간한 향약제집성방(보물 제1178호)과 1434년 중국의 한의서를 실정에 맞게 새로 편찬한 전문 의학서인 태산요록(보물 제1179호) 등 정부가 지정한 보물 13점도 소장하게 됐다.

서양의학이 들어오기 시작한 1900년대 초 병원에서 쓰던 수술용 해부기기와 산소발생기 혈압계 현미경 의사면허증 등도 모았다.

이 회장은 “한국 전통의 의료 유물을 보존하고, 시민들이 관람을 통한 정서적인 행복을 느낄 수 있도록 박물관을 세웠다”고 말했다.

○ 3만 점이 넘는 유물

박물관은 남동구 구월동에 처음 문을 열었으나 관람객이 늘어나면서 지난해 40억 원을 들여 지금의 자리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새로 건립됐다.

의학사료관에서는 국가지정문화재 14점과 산거사요, 식물본초, 신응경과 같은 희귀한 의학서적을 볼 수 있다. 이 회장이 그동안 수집한 각종 전통 의료기구도 볼 수 있다.

이 밖에 박물관은 민속생활사 유물과 희귀 고서, 근대 정부기록자료 등 3만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박물관 주변에는 인천시립박물관과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이 들어서 문화벨트를 형성하고 있다.

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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