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모린 다우드]힐러리와 오바마의 氣싸움

  • 입력 2008년 2월 1일 02시 42분


기사도 정신으로 새롭게 무장했다지만 버락 오바마는 어떤 숙녀 앞에선 위축되기만 한다.

지난달 28일 W(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국정연설 때 그가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에게 보낸 ‘냉대’는 벌써 유명세를 치렀다. 이날 오바마는 옆자리의 테디(에드워드의 애칭) 케네디 상원의원이 힐러리 의원과 악수하는 동안 힐러리 의원을 외면하고 클레어 매커스킬 의원과 얘기를 나눴다.

누구도 W에게 주목하진 않았다. 이미 찌그러진 대통령이 돈(예산)을 달라는 소리니 말이다. 유일한 관심사는 서로 으르렁대는 오바마와 힐러리였다.

불과 몇 시간 뒤면 케네디가(家) 사람들과 포옹할 오바마로서는 엉클 테디(케네디 의원)처럼 (케네디가의 오바마 지지 선언으로) ‘물먹은’ 힐러리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이날 힐러리는 유난히 눈에 띄었다. 검은색 정장 차림 일색인 곳에서 힐러리는 도전적인 빨간색 옷을 입었다. 마치 스칼릿 오하라(‘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가 바람피우는 장면을 들켜 망신당한 뒤 오히려 도드라지는 옷을 입고 모임에 나타난 것처럼.

오바마가 힐러리에게 눈길을 주지 않은 것은 클린턴 부부가 그를 몹시도 흔들어댔음을, 또 그로 인해 오바마도 예비경선 자체를 개인 간의 문제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음을 잘 보여준다.

오바마는 29일 캔자스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바로 그 ‘냉대’를 다룬 기사를 보고 놀랐다고 한다. 그는 “클레어가 말을 걸어 몸을 돌렸을 뿐”이라며 “힐러리 의원과는 의회 회의장 안에서든 밖에서든 잘 지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거짓말이었다. 사실 “다음은 내 차례”라는 포고문을 발표한 ‘힐러리 여왕’에게 ‘시카고의 젊은 왕자’가 도전장을 내민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무척 냉랭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오바마의 출마설을 다룬 뉴스가 나온 뒤부터 힐러리는 오바마를 냉랭하게 대했다. 오바마는 친구에게 전화해 “힐러리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하면 아마 믿지 않을 것”이라며 괴로워했다.

그날도 오바마가 인사를 건네려 했다면 힐러리는 또다시 냉대했을지 모른다. 오바마는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불에 델까 두려워 다시는 난로에 오르지 못하는 고양이’ 신세다.

오바마가 힐러리에게 냉담한 태도로 돌아선 것은 클린턴 부부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그에게 비난을 퍼부은 뒤부터였다. 마치 댐이 무너진 것처럼 오바마는 힐러리에 대해 자극적인 공격을 연거푸 퍼부었다.

오바마가 힐러리를 떨쳐내는 데 왜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한 보좌관은 “그는 힐러리를 상원의원으로서 존경했다”며 “힐러리가 눈물을 보였을 때도 그는 선거전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힐러리를 변호했다”고 전했다.

힐러리는 뉴햄프셔 토론회 이후 오바마의 무뚝뚝한 표정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힐러리는 그날 저녁 ABC방송에 출연해 오바마가 무례하다고 에둘러 말했다.

낙담한 표정으로 힐러리는 “내가 우정과 단합의 표시로 손을 내밀었지만 답이 없었다”며 “언젠가 악수할 날이 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사실 힐러리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ABC방송에서 힐러리가 보인 뻔뻔함을 감안할 때 오바마가 힐러리를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오바마는 엉클 테디가 자신을 대신해 모든 사람과 싸워주지 않으며 작은 기사도적 행위라도 그 효력은 오래간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모린 다우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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