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회장 구속 수감]檢 칼끝 경제부처-금융계로

  • 입력 2006년 4월 29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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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회장 구치소로 28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뒤 정 회장을 태운 은회색 아반떼 승용차가 서울 서초구 대검청사를 나와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로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鄭회장 구치소로 28일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뒤 정 회장을 태운 은회색 아반떼 승용차가 서울 서초구 대검청사를 나와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로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정몽구(鄭夢九)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이 28일 구속되면서 검찰은 이제 비자금이 어디에 사용됐는지를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검찰 수사 결과 드러난 정 회장의 혐의는 비자금 1390억여 원 조성, 계열사에 4000억여 원 손해 전가, 경영권 편법 승계 등 세 갈래다.

▽정 회장이 비자금 조성 지시=검찰은 정 회장이 비자금 조성을 지시한 ‘최고 책임자’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정 회장은 현대차 재경본부 사무실과 회장실 등에서 김동진(金東晉) 부회장에게 비자금 조성을 지시했다.

김 부회장은 정 회장의 지시 내용을 계열사 고위 임원들에게 그대로 전달한 뒤 허위 회계처리와 금고 보관 등 구체적인 비자금 조성과 관리 방법을 알려준 것으로 드러났다.

▽“노조 관리비로 비자금 500억 원 썼다”=검찰은 정 회장이 비자금 500억 원 이상을 현대차 본사와 계열사의 노동조합 관리비로 사용했다는 관련자 진술을 확보하고 구체적인 사용 명세를 조사 중이다.

정 회장의 영장실질심사를 맡았던 서울중앙지법 이종석(李悰錫) 부장판사는 “비자금은 노조 관리비와 현장 근로자 격려비에 주로 사용됐고, 정 회장의 개인 용도도 일부 있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현대차그룹의 11개 노조는 이날 “정 회장이 조성해 노무 관리비로 사용했다는 비자금 500억 원의 사용 명세를 공개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며 “얼마의 비자금이 어떤 유형의 노무 관리비로, 누구에 의해서 누구에게, 어떤 방법으로 사용되었는지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조는 부당 노동행위에 대해 정 회장을 비롯해 책임자 전원을 검찰에 고발하고 회사로부터 부당한 노무 관리비를 받은 노조 관련자가 있다면 징계 조치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현대차 노조원 이모(46) 씨는 “임·단협이 있을 때면 회사가 부서 회식을 자주 했고 노조 간부를 수시로 접대한다는 소문이 현장 조합원 사이에 파다했다”며 “노무 관리비 500억 원 사용 명세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쟁의 행위를 하지 않거나 파업을 일찍 끝낼 것을 요구하며 접대성 경비로 비자금을 사용한 것으로 검찰은 추정하고 있다.

회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임·단협이 끝나도록 하기 위해 협상 전에 노조에 격려비나 회식비 명목으로 비자금을 제공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로비 수사 본격화=수사의 축은 크게 두 갈래다. 비자금이 정관계 고위 인사에게 전달됐는지, 또 금융브로커 김재록(金在錄·구속 기소) 씨가 부실기업 인수 및 금융기관 대출 알선과 관련해 금융당국과 금융계 고위 인사에게 로비를 했는지가 핵심이다.

검찰은 현대차그룹이 계열사 부채 탕감과 관련해 김동훈(金東勳·구속 기소) 전 안건회계법인 대표를 통해 한국산업은행과 한국자산관리공사에 금품 로비를 했는지 확인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 연구개발(R&D)센터 증축 인허가와 관련해 김재록 씨를 통해 건설교통부와 서울시, 서초구에 로비를 했는지도 수사의 대상이 된다.

비자금 용처와 관련해 검찰은 정치권보다는 경제 부처와 금융계 고위 인사 쪽으로 수사의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이 검찰 수사에 어떻게 협조하느냐와 김재록, 김동훈 씨가 진술한 로비 정황을 뒷받침할 증거를 검찰이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수사의 성패가 달려 있는 셈이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조세피난처의 ‘서류상 회사’ 통해 비자금조성

현대車-중공업, 5000만달러 편법지원했다 날려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이 조세피난처의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비자금을 마련하고, 계열사를 편법 지원했던 사실이 검찰 수사 결과 확인됐다. ▶본보 5일자 A1면 참조

무리한 투자와 외환위기 등으로 2000억 원 이상의 금융기관 채무를 갚지 못할 처지에 놓였던 현대강관이 대표적이다.

정 회장은 1999년 12월 조세피난처인 말레이시아의 라부안에 페이퍼컴퍼니 ‘오데마치펀드’를 설립했다.

오데마치펀드는 현대강관의 유상증자에 당시 주당 4700원이었던 주식 3648만 주를 주당 5000원에 매입했다.

겉으로는 현대강관이 해외자본 유치에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현대가의 계열사였던 현대차와 현대중공업의 돈 5000만 달러를 편법 지원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데마치펀드는 교보생명과 일본 회사에서 투자자금을 끌어오는 대신 현대강관의 주가 하락으로 인한 손실액을 ‘글로벌호라이즌’이라는 홍콩계 페이퍼컴퍼니가 보전하도록 이면계약을 했다.

글로벌호라이즌은 현대차가 3900만 달러, 현대중공업이 1100만 달러를 출자한 펀드다.

결국 현대강관의 주가 하락으로 오데마치펀드가 손실을 입게 되면 그 부분만큼 현대차와 현대중공업이 손해를 메워 주는 구조였다.

실제로 현대차와 현대중공업은 현대강관의 주가 하락으로 출자한 5000만 달러를 불과 2년 만에 대부분 잃었다.

현대차그룹은 제3의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펀드를 운용한 뒤 1800억 원의 수입금 일부를 글로벌호라이즌에 송금했다.

계열사가 무리한 해외투자를 했다는 주주들의 비난을 면하기 위해 손실 일부를 보전해 준 것.

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정 회장이 금융기관의 차입이나 유상증자가 어려웠던 계열사를 편법 지원하기 위해 고안해 낸 방법”이라고 말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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