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이진우]잡초와 함께 사는 법

  • 입력 2005년 8월 22일 03시 03분


코멘트
이 사람의 텃밭에는 작물만큼 잡초가 자라고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보기엔 영락없이 잡초 밭입니다. 눈곱 반만 한 밭 한 뙈기도 제대로 못 돌보느냐는 핀잔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 소리를 귓등으로 들은 지도 몇 해가 되어 갑니다.

이 마을로 내려와서 처음 텃밭을 가꾸기 시작할 무렵에는 이 사람도 텃밭에 잡초가 자라는 꼴을 못 봤습니다.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식으로 잡초를 뽑고 또 뽑았습니다. 그 덕분에 한동안은 여느 농부네 밭처럼 깔끔하였답니다. 그러나 여름이 오고 장마철이 지나면서 전세가 서서히 역전이 되어갔습니다. 땡볕 아래서 잡초를 뽑을 때마다 천하에 쓸모없는 것이 왜 이리 목숨이 질기냐고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제풀에 지치고 말았습니다. 제초제 안 치고 비료 안 뿌리기로 작정한 사람이었으니까요.

잡초란 놈이 꼭 방에 들어와 설치는 파리나 모기처럼 귀찮았습니다. 마당에 불쑥 찾아와 자리를 펴고 앉은 불청객 같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에게 잡초를 텃밭에서 몰아내는 일은 집 안팎을 단속하고 깨끗이 하는 일과 다름이 없었습니다. 마당 한구석에 있는 텃밭에 잡초가 무성하다, 이건 몇 마지기씩 농사를 짓는 마을 노인들 보기에 민망한 일이었지요.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나고 자라는 잡초의 생명력을 이겨낼 만큼 독한 사람이 못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백기를 펄럭이며 잡초와의 공생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밭일은 대충대충. 잡초가 너무 자랐다 싶을 때만 낫으로 베거나 손으로 대충 뽑아 작물 주위에 놓아두었습니다. 작물에 비료가 되겠다 싶었거든요. 죽으면 썩어서 다른 생명의 양분이 되는 게 자연의 이치, 아닌가? 그렇게 생각을 먹으니까 잡초가 자라는 모습이 부담스러운 대신 고마워졌습니다. 작물 역시 먹고 남는 부분은 밭에 뿌려 잡초의 양분이 되게 하였습니다.

잡초에 마음을 열기 시작하자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등기부상으로는 이 사람의 텃밭이 틀림없지만 법적인 효력이 잡초에까지 미칠까요. 인위적으로 구분지어 밭이라 이름 지었어도 그 땅은 본래 잡초가 살아 온 자연의 한 조각일 따름이지요. 잡초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 땅에 뛰어들어 자기를 내몰고 소유권을 주장하는 인간이 가소로웠을 겁니다. 농법이 과학화되면서 잡초도 얼마간 긴장을 하였겠지만요.

요즘 이 사람의 텃밭에서는 잡초와 작물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사람의 개입이 없으면 잡초가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겠지요. 그렇다고 해서 잡초는 악하고 작물은 선하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선과 악은 이익에 따른 가치 기준일 뿐이니까요. 잡초가 자라는 텃밭에라야 지렁이도 살고 곤충도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잡초는 작물과 함께 먹이사슬의 한 부분을 이루었습니다. 내다팔기 위해 작물을 키우지 않는 이상, 수확에 대한 욕심도 없습니다. 욕심이 있다면 잡초가, 잡초같이 사는 사람들이 이 세상의 바탕이고 세상을 지탱해 나가는 힘으로 제대로 대접받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진우 소설가·시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