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이도원]미꾸라지 사라진 시골 도랑

  • 입력 2005년 6월 13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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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도랑이 눈에 띄게 바뀌고 있다. 정겹던 흙 도랑이 사라지고 어느새 콘크리트 수로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모습이다. 이런 변화는 귀중한 물을 아껴 쓰자는 좋은 명목에서 비롯되었을 터이다. 콘크리트 수로는 땅속으로 스며드는 물을 줄이기 위한 장치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전국 방방곡곡에서 더 많은 지하수를 퍼 올리고 있다. 부족한 용수량을 감당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겠지만 땅속으로 스며드는 물은 막고 더 많은 양의 지하수는 퍼 올리는 이런 행위가 과연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그러한 행위가 만연하는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먹이를 먹지 않은 거미의 뒷구멍에서 거미줄이 계속 나올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 강산 아래 자리 잡고 있는 대수층(지하수가 채워지는 지하 공간)의 입이 막힌 상황은 거미줄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단백질을 거의 다 써버린 거미의 경우를 닮은 듯하다.

나이 좀 든 사람들은 옛 기억을 되살려 보라. 어릴 적 시골 동네 우물에 어디 오늘처럼 물이 없었던가. 이런 현상은 지난날 대수층을 채웠던 지하수가 상당히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흙으로 된 농수로가 이 땅에서 차츰 사라지면 그곳에 몸을 기대어 살던 생물들도 버틸 수 없다. 고향 도랑에 살던 참게도 퉁가리도 사라진 지 오래됐다. 그 많던 다슬기도 보기 힘들다. 다슬기를 먹고살던 반딧불이도 이제는 내 고향 여름 풍경을 떠났다. 그 많던 잠자리도 비슷한 운명을 맞았는지 눈에 띄지 않는다. 이제 이 땅에서는 송사리가 헤엄치던 물을 찾아내기도 어렵다. 비교적 생명력이 끈질기던 미꾸라지마저 살 공간이 없다. 먹이를 찾고 몸을 숨기던 흙 도랑이 없어졌는데 그들인들 별수 있겠는가. 오염 때문에 삶을 부지하기 어려운 데다 서식지마저 허물어져 버린 것이다.

이제 고향 땅에선 한 번씩 도랑물을 막고 미꾸라지를 잡던 재미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잡아온 미꾸라지를 호박잎으로 비벼 비린내를 지우고 끓여 먹던 한국산 추어탕을 맛볼 수 있는 희망도 접었다. 풍광과 생물과 사람의 삶이 함께 이 땅을 떠나가는 작은 보기이다. 그런 변화는 모기가 극성을 부리도록 돕는 일이 아닌지 모르겠다. 송사리와 미꾸라지를 하천에 방류해 장구벌레를 잡아먹도록 하는 게 모기를 퇴치하는 가장 좋은 길이다. 이는 영국 임피리얼대 연구진의 제안이다. 우리의 시골 도랑은 그들의 제안에 역행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셈이다.

콘크리트 수로는 흙 도랑에서 살아야 하는 생물들의 처지에서 보면 험악한 세상이다. 그런 경관 요소가 나타나는 뒷면에는 물을 다른 생물에게 주지 않고 독점하겠다는 사람의 메마른 마음이 도사리고 있다. 한 발자국 물러서서 도랑이 무엇인지 자라는 어린이에게 물어보자. 생명이 사라져간 그런 물길을 도랑으로 알고 있지나 않을까. 물기 많은 땅을 좋아하던 수많은 생명이 어떻게 우리 곁을 떠나갔는지도 모른 채 우리는 오늘도 열심히 산다고 믿고 싶어 한다.

이도원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환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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