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이완주]음악을 좋아하는 식물들

  • 입력 2005년 3월 27일 17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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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짐을 지고 뒷동산에 오른다. 등에 떨어지는 햇살이 따사롭지만 숲은 아직 수묵화처럼 칙칙하다. 나뭇가지를 건드리자 꽃술이 바르르 떨면서 꽃가루가 부옇게 흩날린다. “그래, 너는 오리나무야.” 몇 발짝을 옮기자 꽃망울을 막 터뜨리려는 나무가 눈에 띈다. “그렇지, 너는 봄의 전령 생강나무지.” 봄볕이 쏟아지는 양지쪽에는 어느 새 애기똥풀이며, 지칭개, 황새냉이 포기가 제법 실하다. 인사를 던지고 이름을 불러주자 김춘수의 ‘꽃’처럼 그들은 내게로 온다. 나는 이렇게 식물과 이야기를 나눈다. 바야흐로 식물의 계절이 시작되고 있다. 산수유-목련-진달래로 이어지는 꽃 릴레이가 질탕하게 펼쳐질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곡식은 주인 발소리를 듣고 크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과연 말을 걸면 정말 식물이 알아듣긴 하는 걸까. 우연한 인연으로 나는 1992년부터 식물이 음악을 듣는지를 연구 중인데 점점 그렇다는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뽕나무에 아주 섬세한 전류측정기를 연결하고 잎을 때리거나 가위로 자르면 전류가 예민한 변동을 보인다. 유리벽으로 막힌 바로 옆방 뽕나무에 센서를 연결해 놓고 이쪽의 뽕나무를 때리면 그것이 덩달아 반응한다. 더 흥미로운 현상은 모든 뽕나무가 아픔을 같이 나누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람이 같은 상황에서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처럼 둔감한 놈들도 있다. 어떤 놈은 문을 여닫거나 유리벽 너머 복도를 지나쳐도 반응을 보인다. 뽕나무를 막대로 건드리면 나무 몸속의 전류가 10분이고 20분이고 자극을 그만둘 때까지 변동을 보이지만 자연 바람과 비슷한 선풍기 바람에는 약 3분간만 반응하고 곧 평정을 되찾는다. 손놀림과 선풍기 바람을 구별할 줄 안다는 것이다. 미나리는 음악을 듣는 동안은 물론이고 음악을 꺼도 한동안 반응을 보인다. 미나리나 오이는 특히 음악을 좋아하며 쪽파나 벼는 음악에 둔감한 것으로 판명됐다.

그런 실험을 통해 ‘그린음악’이라는 동요풍에 물과 새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를 섞은 식물음악을 만들었다. 음악을 들려주는 오이 농가는 감칠맛이 더 높은 오이를 예전보다 많이 생산해 냈다. 음악을 들은 오이는 인체에 이로운 루틴과 가바 성분이 2.5배나 많이 생기는데 이 성분은 해충의 수명을 단축하고 알을 적게 낳게 해 농약 사용량을 줄이는 효과도 낸다. 외부 인사가 정말 그런지를 확인하려고 하우스를 찾았을 때 들려오는 청개구리의 합창소리가 그의 의문을 풀어 준 적도 있었다. 친환경농업을 하는 이들은 그 효과를 몸으로 경험하고 있다.

식물의 몸 전체가 세포다. 음악이 우리 고막을 두드리는 것처럼 식물세포를 두드리면 세포질이 덩달아 울려 화학적인 변화로 이어진다. 식물은 온몸으로 음악을 감상하는 셈이다. 음악농법은 들어서 즐겁고, 잘 자라고 많이 따서 즐겁고, 맛있어서 즐겁고, 농약을 덜 쳐서 즐겁다. 식물이 음악을 듣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즐겁다.

음악을 듣는 식물과 듣지 않는 식물을 나누는 방음벽 설치가 만만치 않은 등 음악농법을 발전시키는 데에는 적지 않은 어려움이 존재한다. 그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귀도 없는 식물이 어떻게 음악을 듣느냐며 의아해 하는 우리의 통념이다. 식물이 ‘숨쉬는 바위’가 아닌 ‘묵언하는 동자승’이라고 생각을 바꿔 보면 어떨까 싶다.

이완주 충남농업기술원 기술자문관·그린음악농법 창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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