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김원겸]밤나무숲 농가의 최후

  • 입력 2005년 3월 13일 18시 1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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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으로 터진 ㄷ자 모양으로 앉은 농가였다. 안방과 작은방 사이에 대청마루가 있고 동쪽으로 외양간과 헛간도 있었다. 대청 뒷문 밖은 밤나무가 빽빽한 야산 숲. 도시로부터 10리도 안 되는 거리인데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는 듯싶었다. 농가를 구입한 단짝 친구는 수리해 사용할 때까지 집과 농작물 관리를 내게 맡겼다. 나는 친구보다 더 신이 나 마치 내 것인 양 잽싸게 그 집을 접수했다.

때는 유월이었다. 텃밭의 고추는 포기마다 탐스러운 열매가 달려 있었다. 오이와 토마토 여남은 포기와 아욱, 쑥갓, 상추도 한 자리씩 차지했다. 밭가 언덕에는 호박 포기들이, 뒤꼍 돼지우리 옆에는 박 이파리가 싱그러웠다. 나는 비번 날이면 경의선 철길 가 오솔길을 걸어 그 집으로 갔다. 대청에 누워 서까래 드러난 그을린 천장을 보며 뻐꾸기 소리를 듣다 낮잠에 빠지거나 밭일을 하거나 하며 어둑해질 때까지 머물렀다. 서울 한복판 땅 밑 일터, 탁한 공기 속 전자파, 그리고 천차만별인 사람들로부터 벗어난 해방감을 만끽했다.

특별한 그 즐거움은 오래 가지 않았다. 친구는 장마철이 끝나자 계획했던 일을 진행시켰다. 나와 직장동료 몇몇을 끌어들였다. 첫눈에 어딘지 범상치 않아 보였던 그 옛집은 놀이를 즐기는 듯한 이의 손길에 내맡겨졌다. 한 농촌 가정의 숱한 이야기들이 겹겹이 붙여진 듯한 빛바랜 벽지의 흙벽이 헐리고 수수깡 뼈대가 부끄럽게 드러났다. 시멘트와 기와 밑에 켜켜이 시간의 흔적으로 쌓인 볏짚들도 억지로 옷을 벗기듯 걷혀졌다.

그렇게 형체가 사라지는 동안 나는 내심 찜찜했다. 그런 심정으로 헌집을 말끔히 없애고 새집 짓는 일을 거들었다. 바깥벽이 있던 자리를 따라 빨간 벽돌을 쌓고 지붕을 얹었다. 마당이 거실 바닥으로 변했다.

그 집은 우리들의 사랑방이 되었다. 함께 텃밭을 가꾸었고 과일나무를 심었다. 정자에 모여 모깃불을 피워 놓고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풀벌레 소리를 듣기도 했다. 두 번째 봄부터인가 동네 사람이 집 가까이에 있는 한 마지기 넘는 밭을 빌려주어 농사일을 시작하기도 했다. 유기농법으로 한답시고 가까운 젖소 목장에서 지렁이가 바글거리는 묵은 소똥을 날라 두둑하게 밭에 뿌렸고 풀과 벌레들과 싸웠다. 그 집은 날마다 가야 하는 동네 놀이터와도 같았다.

우리가 그렇게 하는 동안 마을 주변은 빠르게 변했다. 가족들과 함께 시도 때도 없이 몰려가 시끌벅적하게 굴었던 탓이었을까. 물감 번지듯 아파트 도시가 그 집 코앞까지 세력을 뻗쳤다. 4차로로 넓혀지나 했더니 길가 여기저기에 아파트 터가 닦였다. 마침내 단지로 변하지 않은 마을들과 주변의 모든 산과 들이 깡그리 거대한 택지개발지구가 되었다. 내가 그 집에 처음 발을 디딘 지 8년여 만이다.

지지난달 초순 아주 추운 날, 우리들은 그런 변화와는 무관하게 끝까지 싱글벙글하며 그 집으로 향했다. 친구가 그 집에서 10여 분 걸리는 새 아파트로 이사를 가는 그 날이 마지막 모임이었다.

이제 농가의 옛 주인인 할머니의 보금자리가 그랬던 것처럼 그 집도 사라지고 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 되자마자 맹수들에게 맡겨진 초식동물처럼 고물 수집하는 사람들 손에 마구 뜯기고 있다고 한다. 앵두꽃 자두꽃 눈부시게 핀 그 집에서의 그런 봄은 우리에게 이제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김원겸 동요작사가·서울시지하철공사 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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