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라이트]4부<5>학교선택권과 ‘대입 3不’

  • 입력 2005년 2월 21일 17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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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인재를 과연 어떻게 양성할 것인가. 국가의 백년대계(百年大計)인 교육의 주요 현안에 관해서도 뉴 라이트(New Right) 진영과 진보 진영의 시각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뉴 라이트 진영은 무엇보다 교육의 획일성을 시정하고 경쟁의 원리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구체적으로 고등학교 평준화 제도를 폐지해 학생들이 학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대학엔 학생 선발권을 부여해야 국가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진보 진영은 교육의 사회적 통합 기능을 더 중시한다. 어떤 대학을 나왔느냐가 학생들의 인생을 좌우하는 현실에서 학교 선택권을 인정할 경우 경제력이 있는 집안의 학생들이 양질의 교육기회를 독점해 계층간 갈등을 부추길 것이라는 주장이다. 뉴 라이트 운동을 지지하는 한재갑(韓載甲)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과 진보 진영의 한만중(韓萬中)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이 14일 본사 14층 회의실에서 고교등급제 대입본고사부활 기여입학제 등 이른바 ‘대입 3불(不) 문제’ 등에 관해 대담을 가졌다.》

○ 평준화의 공과(功過)와 유효성

▽한재갑 대변인=평준화 제도가 도입 당시의 목적을 어느 정도 이뤘는지, 현 시점에서도 여전히 필요한 정책인지를 따져볼 때가 됐다. 평준화는 고교 서열화를 완화했고 1970년대 산업화 시기의 대량 생산체제에 맞는 표준화된 인력을 양산했다는 점에선 기여했다.

반면 사교육비 경감 측면에서는 효과가 없었다. 또 21세기 정보화 사회에는 맞지 않는다. 지금은 교육에서도 다품종 소량생산을 위한 다양성과 수월성(秀越性)이 중요하다. 치열한 국가경쟁을 위한 엘리트 교육에도 적합하지 않다.

▽한만중 대변인=평준화가 정보화 사회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은 객관적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실제로는 기업도 평준화 체제에서 길러진 인재를 원한다. 특수목적고를 나온 학생들의 사회생활이 한국 사회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평준화를 해제하면 중학교는 물론 초등학교에서부터 입시가 과열될 것이다.

○ 평준화와 학력

▽한재갑=평준화와 학력의 상관관계는 연구 단체의 ‘의도와 성격’에 따라 극과 극으로 달라진다. 다만 한 가지 공통분모는 ‘상위 3∼5% 학생은 학력이 떨어졌다’는 결론이다. 국제비교에서도 상위권의 학력은 많이 뒤쳐진다.

우리나라 헌법에는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돼 있지만 현재 상위권 아이들은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누리지 못한 채 희생당하고 있다. 다른 것은 다르게 봐주는 것이 진정한 평등이고, 이런 열린 마음이 절실하다. 이것이 바로 뉴 라이트 운동의 지향점이다.

▽한만중=평준화로 학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일부 대학교수들의 판단일 뿐이다. 중요한 능력은 창의력과 어떤 상황에서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다.

신뢰할 만한 국제 조사에선 한국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사회 통합성이 최상위권으로 나온다. 고교 간 학력 격차를 줄여 학습의욕을 높인 덕분이다.

○ 평준화의 학교선택권 침해

▽한재갑=평준화체제는 세계에서 우리만 채택하고 있는 유일무이한 제도이다. 해마다 학교 배정시비에서 드러나듯 평준화는 학생의 학교선택권을 제한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지난해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일률적 종교교육에 항의해 일어났던 ‘강의석 군의 단식 투쟁’이 보여주듯이 배정 시 종교 문제도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따라서 사립학교부터 평준화에서 제외시키는 등 단계적으로 학생들에게 학교선택권을 부여해야 한다.

▽한만중=미국의 학교 선택권에 대한 연구를 보면 부모의 경제적 능력에 따라 교육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는 능력이 차이가 나고, 자녀의 교육의 질이 달라진다. 결국 경제적 계층별로 교육차별이 심화됐다.

다양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것은 교과서가 획일적이기 때문이지 평준화 때문은 아니다. 공동 학군의 확대, 종교의 자유에 대한 실질적 보장 등으로 얼마든지 학교선택권을 보장할 수 있다.

○ 평준화와 국가 경쟁력

▽한재갑=보편성을 강조하는 평준화는 필연적으로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린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도 수월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교육을 개혁하고 있다. 조기 유학으로 연간 2조2000억 원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기러기 아빠’가 사회 문제가 되는 것도 국내 교육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증거다.

▽한만중=국가 경쟁력의 저하를 지적하면서 고교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평준화제도를 도입한 1970년대와 지금은 고교의 역할이 엄연히 다르다. 당시는 고등학교 진학률이 70%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대학 진학률이 전문대를 포함해 90%를 넘는다. 고교는 학력보다는 보편성 교육에 치중해야 할 때다. 한국의 학력이 떨어진다면 대학 경쟁력을 탓해야 한다.

○ 본고사 부활과 고교 등급제

▽한재갑=자신이 원하는 인재를 선발해 특성에 맞게 교육하는 것은 대학의 책임이자 권리이다. 본고사도 대학이 알아서 실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회문제가 된 고교 등급제의 경우에도 ‘학교 간 학력 차이’를 어떤 식으로든 반영해야 옳다. 더 이상 교육을 평등주의나 사회 계급적 관점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한만중=대학이 학생의 선발권을 가져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지금 이런 기본이 지켜지지 못하는 이유는 이를 가로막는 ‘몸통’이 있어서다. 지금처럼 대학이 서열화되고,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가 인생을 결정하는 구조에서는 대학에 선발의 자율권을 줄 수 없다. 중·고교 때부터 입시전쟁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 서열화’라는 몸통을 없애려는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선발의 자율성을 말하는 것은 앞뒤가 바뀐 것이다.

고교등급제는 기득권층의 탐욕을 드러낸 측면이 있다. 기득권층은 1등을 한 자신의 자녀가 낙후 지역 고교의 1등들보다 더 좋은 점수를 받기를 기대하지 말고 이들에게 더 좋은 점수를 주라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발휘해야 한다.


정리=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노시용 기자 syroh@donga.com

▼고교평준화의 역사▼

‘고교평준화제도’는 1974년 서울과 부산에서 처음 시작됐다.

비평준화 체제에서 특정 명문 고등학교에 대한 선호로 ‘중3 병’이라는 말이 생길 만큼 고등학교 입시가 과열되자 정부는 1973년 2월 고교 무시험 추첨 배정과 교육여건 평준화를 골격으로 하는 ‘고등학교 입시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당초 취지와 달리 30여 년간 시행되어 온 고교평준화제도는 오히려 학생들의 학력을 저하시키고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렸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 때문에 교육감이 사실상 도입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평준화 지역도 확장과 축소를 반복했다.

1980년대 초까지는 확대기. 대구 인천 광주 등이 잇따라 평준화제도를 도입했다. 그러나 이후 학력 저하의 문제가 본격 부각되자 1990년부터 전남 목포, 전북 군산, 경북 안동 등 7개 지역이 평준화를 폐지했다.

하지만 2000년 이후 대학입시에서 내신성적의 반영 비율이 높아지면서 평준화제도를 부활하는 지역이 늘었다. 비평준화 지역의 상위권 학생들이 내신에서 불이익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2000년 전북의 군산 익산이 평준화제도를 부활한 데 이어 올해는 전남의 목포 여수 순천이, 내년엔 경남 김해가 평준화제도를 각각 도입할 예정이다.

현재 고교평준화제도는 서울과 6대 광역시, 전국의 19개 시에서 시행되고 있다. 전국 고교생의 75% 이상이 평준화 교육을 받고 있다.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노시용 기자 syr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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