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산책]‘B형 남자친구’ 사랑 앞에서…비인간적일까?

  • 입력 2005년 1월 27일 15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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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시네마제니스
사진 제공 시네마제니스
2월 4일 개봉되는 로맨틱코미디 ‘B형 남자친구’의 주인공은 둘이다. 하나는 ‘B형’이란 혈액형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남자친구’란 인물이다.

이 두 주인공은 모두 10대 소녀 관객층을 타깃으로 겨눈다. 혈액형을 통한 궁합보기와 더불어 TV드라마 ‘파리의 연인’ 이후 급부상한 배우 이동건은 이 연령층의 뜨거운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스크린 위에 띄우는 비주얼로 10대의 모바일 문화를 살짝 덧씌웠다.

운명적 만남을 기다리는 A형 여대생 하미(한지혜)는 어느 날 문자 메시지를 잘못 보냈다가 상대인 영빈(이동건)을 만나게 된다. “B형 남자는 안 된다”는 사촌 언니 채영(신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미는 제 멋에 사는 영빈에게 끌린다. 영빈은 찜질방에서 살더라도 외제차를 몰고 다녀야 하는 남자. 혈액형은 못 속이는 걸까. 하미는 점차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B형 남자 영빈에게 상처를 받는다.

먼저 첫 번째 주인공인 ‘남자친구’는 성공이다. 냉소적이면서 로맨틱한 이동건의 매력은 거의 물화(物化)됐다는 느낌을 줄만큼 줄줄이 전시되니까 말이다. 이동건은 한눈을 찡긋하며 “나 너 찍었다. 너 마음에 든다. 앞으로 잘해보자”며 검증된 TV 이미지로 ‘쿨’하게 상대를 사로잡을 뿐 아니라, 테라스에 선 하미를 올려다보며 ‘앤드 아이 러브 유 소(and I love you so)’를 감미롭게 부른다(가수 출신인 이동건이 직접 부른다). 앙증맞은 외제자동차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건 물론이고 그의 센스 넘치는 패션 ‘메뉴’도 다양하다.

이 영화는 “어쩜!” 하면서 영빈의 일거수일투족에 몸 둘 바 몰라 하는 하미의 소녀적 시점(視點)이 되려 한다. 이는 이동건을 애인으로 사귀는 듯한 착각(좋은 말로 ‘대리만족’이라고도 한다)을 여성관객이 갖도록 만드는 전략이다.

두 번째 주인공인 ‘B형’은 실패다. 이 영화는 B형 남자를 ‘자기중심적’이라고 설정한 뒤 이를 모티브로 삼아 이런저런 에피소드를 뽑아낸다. 영빈은 몸에 좋은 건 자신만 먹고, 카드 빚을 갚아주는 조건으로 선배에게 자기 여자친구를 ‘넘기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영빈을 이렇게 딱 규정하고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캐릭터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빈은 이기적인 남자인지, 로맨틱한 남자인지, 둘 다인지, 둘 다 아닌지 불분명하다. 이는 에피소드들을 서로 붙여주는 접착력이 약한 탓이다. ‘재미를 줘야 한다’는 강박에 눌려 인과관계를 잃은 에피소드들을 두서없이 나열하는 동안 영빈의 캐릭터는 몸집을 불려가지 못하고 초반의 그 농도에서 그대로 정지해 버린다. 배우와 감독 간 캐릭터에 대한 100%의 합의가 이뤄지지 못한 흔적도 곳곳에서 보인다. ‘싸가지’ 없는 영빈에게 사연이 있었음을 드러내는 클라이맥스가 관객의 마음을 뜨겁게 찌르지 못하는 것도 제자리 걸음을 하는 이야기 구조가 가진 한계다. 그래서 웃음은 자글자글하되 터지지 않고 감동은 아릿하되 ‘짠’하지 않다.

이 영화에 축복받은 건 여성관객뿐일까. “뽀뽀할 거야, 키스할 거야?” 하고 온갖 귀여운 체를 다하는 하미 역의 한지혜는 슈퍼모델 출신답게 미니스커트를 고집하며 싱싱한 몸매를 과시한다. 혈액형 신봉자인 하미의 사촌언니 채영(신이)은 조미료 역할을 톡톡히 한다. 하지만 경상도 사투리에 엽기적 표정을 짓는 신이의 연극적인 연기도 이제 슬슬 미래를 대비해야 할 시점에 온 것 같다. 귀고리에 느릿느릿 말하는 채영 애인 역의 이현우도 말이다.

최석원 감독의 장편 영화 데뷔작. 12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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