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 입력 2004년 10월 27일 17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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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출신 혁명가 체 게바라의 젊은 시절을 로드무비 형식으로 담은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일명 ‘푸세’라 불리던 게바라는 친구인 알베르토와 함께 ‘포데로사’라는 이름의 모터싸이클에 몸을 싣고 8개월 간의 남미대륙 여행길에 오른다. 오토바이 뒤쪽이 게바라역의 베르날. -사진제공 올댓시네마
아르헨티나 출신 혁명가 체 게바라의 젊은 시절을 로드무비 형식으로 담은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일명 ‘푸세’라 불리던 게바라는 친구인 알베르토와 함께 ‘포데로사’라는 이름의 모터싸이클에 몸을 싣고 8개월 간의 남미대륙 여행길에 오른다. 오토바이 뒤쪽이 게바라역의 베르날. -사진제공 올댓시네마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는 정직해서 힘이 세다. 영화적이지 않아서 더 드라마틱하다. 혁명가 체 게바라는 쿠바 민중을 해방시켰는지 모르지만, 그의 젊은 시절을 다룬 이 영화는 이제껏 딱딱하게 의미가 굳어져 버린 한 단어를 제대로 ‘해방’시켰다. 그 단어는 바로 ‘길’이다. 핸드 헬드(들고 찍기) 기법을 통해 묘사되는 이 ‘길’이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진 살아있는 유기체임을 아는 순간 당신은 이미 체 게바라의 깨달음을 훔쳐버린 것이다.

다음달 12일 개봉되는 ‘모터싸이클…’은 일명 ‘푸세’라고 불리던 철없고 연약한 23세의 의대생 에르네스토 게바라(체 게바라의 본명)가 벌이는 8개월 동안의 남미대륙 여행을 담았다. 푸세(가엘 가르시아 베르날)는 생화학도인 친구 알베르토(로드리고 데 라 세르나)와 함께 아르헨티나에서 칠레, 페루의 황량한 땅과 유서 깊은 유적지를 거치는 동안 혁명의 깨달음을 얻어간다.

푸세가 깨달아 가는 과정은 그가 걸어가는 ‘길’과 길에서 만나는 ‘사람’, 그리고 사람들이 사는 터전인 ‘땅’이 삼위일체임을 깨닫는 과정과 일치한다. “길에서 지내는 동안 뭔가 달라졌어”라는 그의 말은 이를 집약한 표현이다. 이 영화가 그저 ‘아름답다’는 범주를 벗어나 뭔가 ‘지독한 낭만성’을 보여주는 것은 이 영화의 소재(길)와 주제(사람)와 정서(땅)가 정확히 하나이기 때문이다. 넘실거리는 강물과 들판에 부는 바람, 그리고 몰아치는 눈보라와 내리쬐는 햇살이 뭔가를 새삼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면 그걸로 이 영화는 다 말한 것이다.

소외돼 죽어가는 노파, 죽음을 무릅쓰고 하루벌이를 하는 노동자, 배에서 만난 매춘부 등 갖가지 현지인들과의 짧은 만남과 헤어짐을 다큐적 뉘앙스로 반복하는 이 영화가 강력한 리얼리티를 갖는 까닭은, (역설적일지 모르지만) 이 영화가 그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그냥 스쳐 지나가기 때문이다. ‘주장하기’보다 ‘보여주기’를 선택한 이 영화의 초반 전략은 그래서 강한 중독성을 갖는다.

그러나 ‘모터싸이클…’은 천식을 앓으며 골골하던 푸세가 알베르토를 앞질러 걸으며 길을 재촉하게 되는 중반 시점부터 태도를 바꾼다. 푸세의 깨달음 속으로 확 쑤시고 들어간다. 라틴아메리카 최대 나환자촌인 산파블로에 당도한 푸세 일행이 나환자들과 동고동락하는 후반부에서 푸세는 ‘23세 예비의사’에서 ‘시대의 의사’로 일약 성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8개월간의 여정에 종지부를 찍는다. 아주 중요한 얘기를 오히려 스쳐가듯 말해서 매력적이던 이 영화는 바로 이 순간부터 노골적인 직설화법으로 변한다.

이 영화의 후반부는 ‘체 게바라’를 원하는 사람에겐 진하고 강렬하다. 대신 ‘영화’를 원하는 사람에겐 동어 반복적이다. 왜 ‘의미’는 늘 강하게 말해져야 하고, ‘깨달음’은 늘 끝장을 봐야 하는 걸까.

‘중앙역’의 브라질 감독 월터 살레스 연출. 올해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작. 15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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