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프리즘/함인희]수험생들은 어쩌라고

  • 입력 2004년 10월 26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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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명망 있는 인구학자에게서 항간에 떠도는 조크를 들었다. “요즘 출산율이 너무 떨어져 문제라지만, 만일 세 번째 자녀를 낳으면 무조건 서울대 합격을 보장해 주겠노라 공표하면, 아마 출산 파업 문제는 일거에 해소될 겁니다.” 그 자리에선 모두 박장대소를 했지만 꽤 뼈 있는 농담이었기에 함께 자리했던 이들의 속내가 그리 편치만은 않았던 듯하다. 더욱이 ‘고교 등급제’ 의혹이 불거지면서 사회적 비난의 표적이 된 사립대 교수의 처지이고 보니, 곤혹스러움에 민망함이 덧붙여지기까지 했다.

▼입시제도 힘겨루기 이제 그만▼

대한민국에서 대학입시전형은 온 국민의 이해가 첨예하게 걸린 최대 관심사임을 그 누가 부인하랴. 그 덕분에 현행 대학입시제도의 폐해를 단번에 시정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 존재하리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고 ‘학교에선 잠자고 학원 가서 공부한다’는 어이없는 교육 현장을, ‘사오정’으로 대표되는 냉혹한 경제 현실 하에서도 최소한 수입의 40% 이상을 사교육비로 투자해야 하는 고비용 저효율의 불합리한 현실을 그대로 방치해 둘 수는 없는 일 아니겠는가.

이토록 절박한 위기의식에서 출발하여 최선이 불가능하다면 차선이라도 찾아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에서 8월 말 1차 모습을 드러냈던 ‘2008학년도 대학입시 개선안’이 실체조차 분명치 않은 ‘고교 등급제’ 논란에 휩싸이면서 의도하지 않았던 ‘이념 대립’ 양상으로까지 번짐에 따라 최종안 발표가 몇 차례나 미뤄지며 난산에 난산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진정 우리 모두에게 불행이 아닐 수 없다.

‘고교 등급제’로 인한 파문으로 세상이 요동치는 요 얼마 동안, 내 귀에서 떠나지 않던 목소리는 지난여름 중국여행 길에서 만났던 한 30대 중반 엄마의 하소연이었다. “우리 아들 녀석 보고 있으면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 겨우 중학교 1학년인데 벌써부터 시험 때면 오전 2, 3시까지 공부한다고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해요. 엄마 마음에 그만 자라고 해야 할지, 더 공부하라고 해야 할지 정말 판단이 안 서요. 이렇게 기 쓰고 공부해 봐야 좋은 대학 붙는다는 보장도 없고, 또 좋은 대학 나와 봐야 본인이 원하는 직장에 들어갈 수 있는 현실도 아닌데…. 제 주변을 보면 10명 중 6, 7명은 이미 아이들을 조기유학 보냈거나 보내려고 준비하는 중인데 저도 더 늦기 전에 마음을 정해야 할까 봅니다.”

현실 상황이 이러할진대, 불쌍한 우리 아이들을 볼모로 하여 집단이기주의를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한 채, 전선(戰線)을 확대해 가고 갈등구도를 조성해 가는 소모전일랑은 이제 그만 접었으면 한다. 불쌍한 우리 아이들, 고래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로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차제에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여 경쟁력과 수월성을 갖춘 인물로 키워 내고 싶은 대학의 처지도 십분 인정해 주면서, 동시에 다양한 소외 집단에도 ‘기회의 평등’을 보장해 줌으로써 사회적 불평등이 확대되거나 강화되는 것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로서의 교육 기능 또한 확보해 줄 수 있는 현실적 방안들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 보자.

▼현실적 대안찾기 머리 맞대야▼

지난 혼란의 와중에서 교육인적자원부가 ‘대학, 고교, 학부모 협의체’ 구성안을 선보이자마자 ‘별 실효성이 없으리라’는 회의의 목소리가 ‘한번 해 보자’는 지지의 목소리를 압도했다. 그렇다면 우리 교육의 난맥상을 충분히 고려한 상태에서 좀 더 실현 가능성이 높은 대안이 있기는 한 건가. 멀리 앞을 내다보고 주도면밀하면서도 정교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교육정책을 앞에 두고 ‘결사반대’ 또는 ‘절대 고수’를 외치기에 앞서, ‘내신 부풀리기’에 대한 진솔한 자성의 목소리가 들려와야 할 것이다. 또 ‘학벌주의’의 폐해에 침묵해 온 데 대한 비판적 반성의 목소리가 뒤를 이어야 할 것이다. 시작도 해 보기 전에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한 발짝도 양보하지 않은 채 여전히 힘겨루기만 한다면, 우리 아이들이 너무 불쌍하지 않은가.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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