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이진우]카약 타고 무인도 여행

  • 입력 2004년 9월 20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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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는 저구 마을은 어촌입니다만 친한 어부도 없고 배도 없던 저에게 바다는 멀기만 했습니다. 살다보니 어찌 인연이 되어 낡은 거룻배를 가진 노인을 따라 반년 가까이 밤마다 장어를 낚으러 다녔습니다. 밤하늘을 가르는 비행기 불빛을 보고 시간을 알아맞히던 그 시절을 돌이켜 보니 그 반년이 꼭 하룻밤의 꿈만 같습니다.

마을이 잠든 시각이 지나서 선창에 배를 대고 각자 집으로 향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빨랫줄에 널린 장어를 보면 부자가 된 듯했지요. 날이 추워져 더는 장어를 낚으러 갈 수 없게 되자 어부 노릇도 끝났습니다. 따로 벌이가 없던 살림에 장어는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는데 말이죠.

그러다 두 해 전에 카약 투어를 하는 친구 덕에 카약을 알게 되었습니다. 카약을 타고 근처 무인도를 둘러보고 그 이야기를 쓰면 좋겠다는 얘기를 나눴습니다. 올여름, 그 친구가 카약을 빌려줘서 본격적으로 타기 시작했습니다.

오랜만에 비가 그치고 후덥지근한 어느 날 오후, 바다에 카약을 띄웠습니다. 장어낚시 채비부터 챙겼습니다. 목적지는 탑포 마을. 예전에 아이들과 산길로 걸어 다섯 시간 만에 도착한 곳입니다. 어선으로도 30분 정도 달려야 하는 거리입니다.

먼저 예전에 장어 잡던 자리부터 가 보았습니다. 부표에 카약을 묶고 낚시를 던졌습니다. 장어란 놈은 원래 야행성이라 기대는 안했습니다. 카약은 묶인 채로도 출렁거리는 파도를 잘 견뎌냈습니다. 밤에 나가 장어낚시를 해도 되겠다는 자신이 생겼습니다.

다시 파도를 헤치며 안기미, 큰 안기미, 자갈개, 은방 해변을 지나 탑포까지 도착하는 데 2시간 반 정도 걸렸습니다. 자갈개 해변이 아주 좋아서 카약을 대놓고 한 20분 정도 잠수한 것을 빼면 꼬박 2시간 노를 저어 갔지요. 어선의 4분의 1 속력은 낸 것 같습니다.

카약을 타고 가는 동안, 어선에서 일하던 어부 몇과 인사를 했습니다. 어부들은 카약을 보고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카약은 도로를 한가롭게 달리는 자전거처럼 거치적거리는 물건이었겠지요. 낚시보트를 타고 지나가던 어떤 어부는 속도를 줄이더니 “그거 재밌소?”라고 물었습니다. 힘들다고 했더니 어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속력을 냈습니다.

그러나 어부들은 무인도 여행을 하고 필요할 때 장어를 낚으려는 제 사정을 모릅니다. 그런 일 정도를 하기에 동력선은 너무 부담스럽지요. 더욱이 동력선은 차와 마찬가지로 기름을 먹어야 힘을 씁니다. 인적이 드문 무인도 여행을 하겠다는 사람이 동력선이라니, 말도 안 됩니다. 그저 바람인 듯 무인도를 스쳐 지나도 흔적이 남을 텐데요. 육류 소비를 줄이고 장어를 먹겠다는 것도 육류 소비가 그만큼 환경을 파괴하기 때문인데, 장어 몇 마리 잡는 데 기름 먹는 동력선을 쓸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카약은 제 이념에 딱 맞는 물건입니다. 자전거 이후로 이런 물건은 처음입니다. 덕분에 늘 멀기만 했던 바다가 텃밭처럼, 오솔길처럼 가까워졌지요. 덤으로 서둘지 않고도 즐겁게 사는 길 하나를 더 알게 되었습니다.

▼약력▼

△1965년 경남 통영 출생 △시집 ‘슬픈 바퀴벌레 일가’, ‘내 마음의 오후’ △장편소설 ‘오감도’ ‘적들의 사회’ ‘인도에 딸을 묻다’ 등 △4년 전 온 가족이 경남 거제시 저구마을로 옮아가 살고 있다.

이진우 소설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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