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삶]안철환/천생연분 ‘흙과 똥’

  • 입력 2004년 7월 26일 19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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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름 중에 사람 똥이 최고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걸 밭으로 가져갈 마땅한 방법이 없어 오줌만 받아 써 왔다. 그러다 3년 전쯤, 실험 삼아 아침마다 아무도 없을 때 밭 한 구석에다 집중적으로 ‘일’을 봤다. 호미로 구덩이를 파고 일을 본 뒤 흙을 덮어 주는 아주 원시적인 방법이었다. 그 밭에 양파를 심었더니 다음 해 수확 때 주먹만 하게 자란 것을 보고 똥의 위력을 실감했다. 그야말로 오줌은 저리 가라다.

처음 화학비료가 들어왔을 때 그 효과에 놀란 사람들은 ‘금비(金肥)’라 했지만 내가 볼 때는 똥이야말로 진짜 금비다. 색깔이나 모양새나 그 효과가 더욱 그렇다.

올해 초에는 창고에 간단한 뒷간을 만들었다. 똥과 오줌을 분리해 밀폐용기에다 모아 두는 방식이다. 공기를 좋아해 호기발효를 하는 똥은 통기성을 높여 주는 톱밥을 넣어 주고 공기를 싫어해 혐기발효를 하는 오줌은 밀폐뚜껑으로 꼭꼭 닫아 준다. 이 둘을 섞어 버리면 죽도 밥도 안 된다. 발효가 아주 늦고 악취와 벌레만 낀다. 둘을 분리해 놓으면 일주일도 안 돼 톱밥을 넣어 준 똥에는 하얀 곰팡이가 슨다. 오줌도 밭에다 줄 수 있을 만큼 발효가 된다.

잘 숙성된 똥을 주면 흙이 아주 부드러워진다. 색깔도 거무튀튀하고 촉감도 보슬보슬해 마음이 덩달아 푸근해진다. 흙을 좋게 만드는 데 최고라 하는 숯가루에 못지않다. 밥은 밖에서 먹어도 ‘일’은 집에 와서 본다는 옛말이 실감날 정도로 올해 똥으로 키운 봄배추는 대단했다. 맛 역시 두말할 게 없었지만….

자연과 더불어 사는 쇠똥구리…주고받는 순화의 미덕,부지런한 움직임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없는지 돌아보게 해 준다.

식물과 사람 사이에는 중요한 약속이 있다. 식물로부터 먹을거리를 제공받는 대가로 사람들은 식물의 터전인 흙을 잘 가꿔 주고 식물의 번식을 잘 돌보아 주는 것이다. 사람만이 아니라 식물로부터 먹을거리를 얻어가는 모든 동물도 이 약속을 했음은 물론이다. 흙을 가꾸고 번식을 돕는 핵심이 바로 똥이다. 흙에서 나온 것을 다시 흙으로 돌려줌으로써 흙의 건강을 살찌우고, 똥 속에서 두꺼운 껍질을 부드럽게 만들어 식물의 씨앗을 싹틔워 주는 것이다.

그래서 똥은 흙의 또 다른 반쪽이다. 똥과 흙이 식물과 동물을 중매쟁이 삼아 계속 순환하며, 햇빛과 물의 도움을 받아 흙 자신을 살찌워 가는 것이다. 그런 똥이 다시 흙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흙은 이가 빠진 반쪽짜리 동그라미 신세로 전락한다. 흙으로 돌아가지 못한 똥은 천덕꾸러기가 되어 어디에선가 질병의 온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식물은 엉뚱하게도 화학비료와 제초제와 농약을 먹으며 살고, 그것에 견딜 수 있게 길들여지느라 2세도 낳지 못하는 불임잡종으로 성 능력을 상실하고 만다. 우리가 자주 먹는 사과나 수박의 씨를 심으면 싹도 잘 트지 않고 싹이 터도 절대 같은 놈이 나오지 않는다. 노새나 닭의 무정란처럼….

흙의 반쪽을 돌려줄 때는 애초에 받아올 때처럼 건강한 놈으로 반납해야 한다. 엊저녁에 술을 많이 먹었다든가, 고기를 많이 먹었다든가, 불량식품을 많이 먹었다든가 하면 오늘 아침 돌려줄 그 반쪽은 잔뜩 찌푸린 얼굴을 들이민다. 도시 사람들 똥은 숙성이 잘 안된다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내가 키운 건강한 음식을 먹고, 밝은 마음으로 유쾌한 육체노동을 해서 하루를 보람되게 보낸 사람의 똥은 흙이 사랑하기에 충분한 반쪽으로 돌아갈 것이다.

안철환 전국귀농운동본부 도시농업위원회 위원·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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