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포커스]'나비박사' 별명 외과전문의 주홍재 박사

  • 입력 2003년 11월 25일 17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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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간 나비를 채집해 ‘나비박사’라는 별호를 얻은 경기 의정부시 신천병원 주흥재 원장이 23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그동안 채집한 나비들을 들여다보며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의정부=박주일기자
30여년간 나비를 채집해 ‘나비박사’라는 별호를 얻은 경기 의정부시 신천병원 주흥재 원장이 23일 자신의 사무실에서 그동안 채집한 나비들을 들여다보며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 -의정부=박주일기자
《경기 의정부시 해창의료재단 신천종합병원의 주흥재(朱興在·67) 원장은 ‘나비박사’다. 공식 학위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30여년간 국내외 산과 들을 누비며 나비를 채집하고 관찰해 온 삶이 고스란히 반영된, 그를 아는 사람들이 수여한 학위다. 5평 남짓한 그의 진료실에 설치된 책장 3칸 중 절반은 나비 서적이나 카메라, 사진기술 등에 대한 책이다. 그가 나비를 채집한 국내외 지역관련 지도책도 여러 권이다.》

경기 의정부시 해창의료재단 신천종합병원의 주흥재(朱興在·67) 원장은 ‘나비박사’다. 공식 학위를 받은 것은 아니지만 30여년간 국내외 산과 들을 누비며 나비를 채집하고 관찰해 온 삶이 고스란히 반영된, 그를 아는 사람들이 수여한 학위다.

5평 남짓한 그의 진료실에 설치된 책장 3칸 중 절반은 나비 서적이나 카메라, 사진기술 등에 대한 책이다. 그가 나비를 채집한 국내외의 지도책도 여러 권이다.

외과 전문의로서 얻은 명성을 유지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했을 텐데 어떻게 나비에 빠져들게 되었느냐는 질문에 그의 답은 아주 간단했다.

“예쁘잖아요. 이것 좀 봐요. 색이 얼마나 곱습니까. 기자 선생은 얘들이 안 예쁩니까?”

6·25전쟁 중이던 1953년, 피란지의 마산고 1학년에 재학 중일 때 생물 숙제로 나비를 채집한 것이 계기였단다. 나비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 색이 너무 고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고 했다. 의대 재학 중에도 틈틈이 나비 채집을 했지만 잠잘 틈도 없던 인턴, 레지던트 시절을 겪으면서 하는 수 없이 나비채를 놓아야 했다.

그러나 78년 고교 2학년생이던 딸의 나비 채집 숙제를 도와주면서부터 자신의 내부에 잠자고 있던 ‘나비의 꿈’이 되살아났고 이때부터 ‘나비와의 숨바꼭질’은 다시 시작됐다.

주말이면 나비채와 카메라를 메고 전국을 돌았다. 그가 가장 자주 찾는 곳은 제주도. 거의 연중 나비를 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15일에도 제주도에 갔다가 낚시로 치면 대어격인 나비를 채집했다며 자랑이다.

“우리나라에 있느니 없느니 논란이 있는 ‘남방남색꼬리부전나비’를 잡았어요. 이제 확실해진 거죠. 그런데 ‘부전’이 무슨 뜻인지 압니까?”

“…”

“우리나라 나비들의 이름은 대부분 ‘진짜’ 나비박사인 석주명 박사가 붙였는데 정말 고운 이름들입니다. 부전은 여성의 노리개 가운데 색실로 만든 장식품을 일컫는 우리말이에요. 이 나비의 고운 색과 어쩌면 그렇게 잘 어울리는지….”

일년에 서너 번 정도 골프장을 찾는다는 주 원장은 골프를 칠 때 드라이버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뜻밖이다. 드라이버를 잘 쳐야 갖고 간 소형 나비채로 필드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나비들을 채집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

30여년간 국내는 물론 일본 미국 호주 코스타리카 인도네시아 등 세계 각지로 다니며 나비 채집에 몰두하느라 외과 전문의로서의 본분에는 소홀하지 않았을까.

“나비에 몰두하지 않았더라면 연구를 더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다른 곳에는 한눈팔지 않은 덕분인지 환갑을 넘긴 지금도 메스를 잡고 수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겸사(謙辭)와 달리 그는 경희대 의료원장과 외과학회 이사장, 회장 등을 역임했을 정도로 국내 외과계의 권위자로 꼽히고 있다.

외과 전문의이자 ‘나비박사’로 지내온 30여년, 두 영역 모두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게 그의 회고다. 사람 세상에는 결핵이나 장티푸스 등 감염성 질환이 거의 사라진 반면 각종 사고로 인한 외상과 선진국형인 만성 질환이 급증했다. 나비 세계에도 큰 변화가 몰아닥쳤다. 20여년 전만 해도 흔했던 ‘여름어리표범나비’ ‘봄어리표범나비’ 등은 국내에서 멸종된 것으로 보이는 반면 ‘담색어리표범나비’는 채집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늘었다는 것.

“아직 그 원인이 과학적으로 밝혀지진 않았지만 생태계가 몸살을 앓는 것만은 분명해요. 한 질병이 사라지고 또 다른 질병이 생기는 것이나 나비가 멸종하고 급증하는 것 모두 인간이 자연을 깔아뭉갠 탓이죠.”

과학의 발전과 풍족한 물질사회가 질병을 사라지게도 했지만 새로운 질병을 키우고 기존 동식물을 멸종시키는 환경파괴를 가져오기도 했다는 얘기다.

그동안 채집한 나비는 상당수를 후배들에게 분양해 줬지만 현재 자신이 보관중인 것만 해도 200∼300마리씩 들어 있는 박스 100여개에 이른다. ‘왕오색나비’ 등 크고 색이 고운 나비를 좋아한다는 그는 머리가 아플 때 이 나비들을 하나씩 꺼내 보면 온갖 근심걱정이 사라진다고 했다.

“그런데, 이놈들이 뭘 좋아하는지 압니까? 썩은 생선이나 시골의 똥밭에 앉는 걸 좋아해요.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비들도 인생살이처럼 우여곡절이 많습디다.”

86년 ‘한국 나비학회’를 만들어 매년 한 차례씩 학회지를 발간하고 있다. 97년 ‘한국의 나비’, 2002년 ‘제주의 나비’라는 전문서적을 출간했고 내년엔 세 번째 나비서적을 출간할 예정이다.

의정부=이동영기자 argus@donga.com

▼주홍재 박사는 ▼

―1936년 함경남도 북청 생

―1961년 서울대 의학과 졸업

―1968년 서울대 의학과 박사학위

―1971년 경희대 의대 일반외과 교수

―1986년 한국 나비학회 창립

―1988∼90년 대한외과학회 이사장

―1993∼95년 경희의료원 원장

―1999∼2000년 대한외과학회 회장

―2002년∼신천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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