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의 나무]<7>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입력 2003-05-19 18:29수정 2009-10-10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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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인문학자인 김우창 교수. 그는 자신을 추종하는 이들을 조직하거나 가르치는 대신 더 큰 인문학적 사유를 꿈꾸는 영원한 지성인이다. 김미옥기자
《한국을 대표하는 인문학자로 지식인 사이에서 폭넓은 존경을 받고 있는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67·영문학). 1970년대부터 문학평론을 통해 심도 깊은 철학적 사유와 한국사회에 대한 예리한 통찰을 보여주며 지식인이 다가가야 할 지적 실천의 한 전범을 이루어 온 그는 올해 초 정년퇴임한 뒤에도 치열한 지적 여정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는 광주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등하굣길의 헌책방들을 지금도 기억한다. 6·25전쟁의 혼란 통에 각 집안의 구석구석에서 흘러나온 책들은 헌책방에 언제나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 길을 오가며 만났던 책들이 그를 만들었다.

서울대 문리대를 다니던 시절에도 대학 부근의 원남동 헌책방은 그의 지적 세계 형성에 기반이 된 책들의 보고(寶庫)였다. 쇼펜하우어, 칸트, 헤겔, 하이데거, 프랑크푸르트학파, 괴테…. 책을 좋아하는 모범생이었던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독일철학과 독일문학을 유난히 좋아했다.

고등학생 때 6·25전쟁을 맞았지만 그가 살던 광주는 다른 지역에 비해 별다른 피해 없이 ‘조용히’ 난리를 겪었고, 4·19혁명의 시대를 살았지만 미국 유학 중 4·19를 지켜봤다. 아버지는 70, 80년대 신민당과 민권당 총재를 지낸 야당 지도자(김의택·金義澤)였지만 그에게 기억되는 아버지는 전통적인 유교적 가부장이었을 뿐이다.

그는 자신이 “실존주의로부터 출발했다”고 말한다. 6·25도 4·19도 옆으로 비껴갔지만 전쟁의 참화와 혁명의 좌절을 겪은 시대의 실존적 회의와 절망감은 그 역시 피할 수 없었다. 폭넓게 세상을 공부하겠다는 생각으로 서울대 정치학과에 입학했지만 일찍부터 철학과 문학을 좋아했기에 결국은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를 찾아 영문학과로 옮겼다.

대학 졸업 후에는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미국 오하이오 웨슬리안대에 유학을 갔고 코넬대에서 영문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돌아와 서울대 영문학과 전임강사가 됐다. 1968년 하버드대 대학원으로 다시 유학길에 올랐고 1975년 미국문명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귀국했다. 그 사이 뉴욕주립대(버펄로) 교수를 거쳐 1974년 고려대 교수(영문과)로 자리를 옮겼다.

영문학자로서의 길을 차근차근 밟아왔지만 그는 굳이 영문학자가 되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자신이 처한 시대와 사회,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자신의 현실을 좀 더 분명히 알고 싶어 공부를 했던 만큼 그의 학문적 관심은 영문학에 한정될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 공부하고 글을 쓴다”고 말한다. 출발은 개인적인 것일지라도 한 개인이 처한 현실을 깊이 파고들면 그것은 단지 개인만의 것이 아니라 그 시대와 사회 속에서 어떤 보편성을 공유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는 생각이다. 결국 그가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은 바로 이 ‘보편성’이다.

그가 처한 현실은 전쟁의 참화와 민주주의의 좌절이 점철된 시대였다. 대학교수가 돼서도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부업을 해야만 간신히 먹고 살 수 있는 궁핍한 생활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오히려 이해관계를 가지고 싸울 만한 것들이 별로 없는 시대였기 때문에 대학교수로서, 지성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더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가 문학을 택한 것은 “현실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바로 문학”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문학은 사람들의 구체적 현실과 정서적 삶을 직접 반영하는 것이고 이에 대한 통찰을 통해 보편성을 지향한다. 구체적 현실로부터 한발 떨어져 바라보며 보편성을 추구하는 철학과 구체적 현실에서 실천을 지향하는 정치학은 그의 문학평론 속에서 문학과 만나 시대에 대한 성찰적 메시지를 남긴다.

기질적으로 철학적 사유를 좋아하는 그이지만 철학을 하다보면 쉽게 빠지게 되는 보편화의 오류에는 빠지지 않는다. 자신의 현실이 그럴 수 없었다고 말한다. “장기적 전망을 가질 수 없는 한국 현실에서 그때그때 하는 일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고 그 상황에서 할 수 있었던 것은 현실에 기초한 합리성을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영문학이란 학문의 테두리를 넘어 우리의 삶을 바라볼 수 있는 한국문학에 더 관심을 기울였고, 나아가 문학을 통해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인문학자’가 됐다. 올해 초 고려대에서 정년퇴임한 그는 적절한 때에 물러났다고 생각한다. 학자에게 요즘처럼 한정된 전공분야의 논문만을 요구하는 대학의 상황에서는 자신 같은 ‘인문학자’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시대를 잘 타고 났다”고 위안을 삼는다.

사람들은 김 교수를 ‘이성주의자’라고 일컫는다. 그는 모든 것을 그 근본으로부터 확실하게 점검하고 반성하는 데카르트의 회의적 방법론과 그 정신을 좋아한다. 이런 관심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철학적 사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학으로도 이어진다. 그는 기회가 닿으면 수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 치밀한 합리성을 배우고 싶다는 것이다. 철학에서 만족하지 못하는 그의 철저한 합리적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다.

김 교수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합리적으로 정리해서 설명하지 못한다. 그 동안 삶의 길에서 선택했던 여러 계기들을 인과관계로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기에는 너무도 많은 우연이 운명처럼 놓여 있고, 다시 그 우연 또는 운명이란 것을 돌이켜보면 그것들은 어쩌면 자신이 그 이전부터 원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는 ‘이성주의자’라고 일컬어지지만 그 이성주의를 끝까지 관철해 나갈 때 만나는 것은 ‘통속적 이성주의’를 넘어선 예술과 삶의 영역인지 모른다.

1990년대 초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심미적 이성’이란 용어는 그의 철학의 핵심을 잘 표현한 것으로 평가된다. ‘심미적 이성’이란 ‘몸의 철학자’로 불리는 메를로퐁티에게서 빌려온 것으로 ‘구체적 보편’처럼 모순되는 두 개념을 연결한 것이다. 일상적 삶 속에서 끊임없이 부딪치는 구체적 감각적 세계와 이를 통일할 수 있는 보편적 이성적 세계의 통합, 즉 구체적 현실 속에서 보편을 추구하고 이 둘을 통합하는 이성이 바로 ‘심미적 이성’이라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성과 합리성을 강조하되 그것이 독단적이거나 폐쇄적으로 될 가능성을 항상 경계한다. 늘 합리적인 것을 생각하면서도 합리성과 연결돼 있는 초월, 그리고 합리성과 함께 인간의 구체적 현실에서 드러나는 파토스를 생각한다. 이 양면을 함께 고려하고 둘 사이를 연결지으려 하기에 ‘구체적 보편’과 ‘심미적 이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성주의자로 보편성을 추구하는 그는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흔히 형성하게 되는 학파나 집단 같은 것을 만들지 않는다. 추종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김 교수는 그들을 조직하고 가르치지 않는다.

“남들을 가르친다는 생각을 갖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상대에게 권력을 행사한다는 것이고 그런 권력의지의 위험은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르친다’는 의식을 갖는 대신 언제나 자기 생각을 열어놓고 함께 이야기한다.

인문학자는 사라지고 전문지식인만 남게 된 시대에 그는 더 큰 인문학적 사유를 꿈꾼다. 동서의 문화가 쉴 사이 없이 교류하며 함께 세계를 만들어 가는 시대에 동서 문화를 함께 공부하는 기관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국가적 차원의 지원 없이 그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기에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제 김 교수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더 잘 알기 위해 유학을 비롯한 한국의 철학과 문화를 더 공부할 생각이다. 이제 그동안의 생각들도 철학적인 면에서 정리할 계획이다. 지적 여정을 멈출 줄 모르는 그는, 그래서 언제나 ‘젊은’ 지성인이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

▼'심미적 이성' 이란? ▼

우리는 사회와 역사에 대한 이해의 근본적 기제를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어떤 현실 이해도 관계된 개인들의 주체작용을 통과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리고 그것은 끊임없이 변하는 구체화의 통로에서만 의미 있는 것으로 드러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전체는 경직적 추상화에서도 그렇지만, 단순히 지나치게 관심의 초점에 놓이고 주제화되기만 해도 그 모습을 감춰버린다. 이것은 시각작용에서 주변이 중심이 되면 그 바탕으로서의 고유한 성격을 잃어버리는 경우와 같다. 유동적인 현실에 밀착하여 그것을 이성의 질서 속에 거두어들일 수 있는 한 원리를 메를로퐁티는 ‘심미적 이성’이라고 불렀다. 이 이성을 통해 무엇이 드러난다고 하면 그것은 ‘개념 없는 보편성’일 뿐이다. 그러나 개념 없이 무엇이 인식되고 계획될 수 있는가? 그것은 생존의 흐름 속에 스스로를 맡겨버리는 일로, 절망의 변호밖에 되지 않는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그것은 적어도 너무 이른 결정으로 현실을 놓치는 것을 경계하는 원리가 되기는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현실의 우위다. (‘심미적 이성의 탐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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