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심희기/'아동 매춘' 신상공개 잘못없다

  • 입력 2003년 5월 1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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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 소녀의 성을 매수한 혐의로 기소되어 벌금 500만원의 형이 확정된 뒤 청소년보호위원회로부터 신상공개 통지를 받은 한 성인 남성이 ‘신상공개는 이중 처벌 금지를 규정하는 헌법에 위배된다’고 헌법 소원을 제기해 지금 헌법재판소가 이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그런데 2003년 3월 5일 한국의 성범죄자 신상공개보다 훨씬 혹독한 미국 알래스카주의 신상등록·공개법이 합헌이라는 취지의 연방최고법원의 판결이 선고되었다. 미 연방최고법원은 9년간의 장고 끝에 알래스카 주법의 ‘등록의무의 부과와 인터넷 공개’는 ‘형벌적인 조치’가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신상공개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제 다음과 같이 항변할 것이다. “미국에서는 ‘신상 등록 공개’의 대상을 성 폭행범으로 한정하고 있는 데 비해 한국에서는 성 매수범까지 신상공개 대상으로 삼고 있어 문제다.” 그러나 만약 미국의 아동 성 매춘의 실태가 한국처럼 심각하다면 미국인들도 미성년 성 매수범을 신상공개 대상에 포함시켰을 것이다.

대구에 거주하는 20대 여성의 약 10%가 직간접으로 성매매 산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 중 대부분이 10대에 성매매 산업에 유입되어 그 환경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이 1만달러에 이르고 글로벌스탠더드를 외치는 곳에서 10, 20대 여성의 10%가 성매매에 종사하는 상황은 모종의 특단조치를 요구하는 비정상적이고 비극적인 상황이다. 이런 실태를 목도하고도 아무런 정책적 수단을 준비하지 않는 정부는 정부가 아니고, 이런 실태를 알고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시민사회는 건강한 시민사회가 아닐 것이다. 또한 아동권리보호조약에 가입한 우리나라는 신상공개의 합헌성 여부를 검토할 때 성인의 눈높이에서 바라보아서는 안 되고, 아동의 눈높이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원조교제를 해서 임신을 하게 된다면 정작 어른들은 우리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임신을 하면 우리는 낙태를 하거나, 아니면 아이를 낳아서 미혼모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몸과 마음에 상처는 더욱더 깊이 파고들 것이다. 정작 어른들은 원조교제를 하면서 그런 문제점을 한번이라도 생각해 보았을까. 그저 어른들은 우리를 데리고 노는 장난감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것은 성매매 경험이 있는 한 소녀가 한국 사회와 성인 남자들을 향해 던지는 절규이다.

현재 30대 이상의 연령층이 나중에 노령화되었을 때 건강한 청장년이 붕괴될 경우 제대로 부양받을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남자 아이들은 아동학대로 멍들고 있고, 여자 아이들은 성인 남성들의 ‘영계 사냥’으로 피멍이 들고 있기 때문이다.

아동의 성매매는 좋은 입법과 강력한 법 집행, 성 매도인과 성 매수인에 대한 재활프로그램의 시행으로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청소년성보호법의 시행과 성 매수자의 신상공개는 이 같은 암울한 현실에 경종을 울리는 의식개혁 캠페인이다. 성매매 여성의 증상과 후유증은 성폭행 피해자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헌법재판소의 현명한 판단을 바란다.

심희기 연세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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