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리포트]300만 싱글 남녀 “I ♥ NEW YORK”

  • 입력 2003년 2월 6일 16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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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종류의 남자들이 다 있지. 내가 뉴욕을 사랑하는 이유가 바로 이거야!”

뉴욕에서 성문제 상담을 해주고 칼럼도 쓰는 캐리 브래드쇼는 이렇게 큰소리를 쳤다. 출판사 직원과 수다를 떨면서 책에 대한 관심보다는 쓸 만한 남자를 찾아보기 위한 출판기념 파티에 한창 들뜬 캐리. 때마침 우연히 출판사에 들른 카리스마형 미남 작가 잭 버거는 캐리를 보자마자 “나의 데이트 카드에도 서명해주시겠어요?”라며 속도를 낸다.

두 사람은 패스트푸드로 점심을 함께하게 됐고 캐리는 잭을 파티에 초대했다. 잭은 농담하듯 “나는 여자친구가 있는데요”라고 말하더니 실제로 파티장에 여자친구를 데리고 나타났다. 평소 ‘뉴욕과 데이트한다’며 뉴욕 생활에 흠뻑 취해있던 캐리는 이번엔 뉴욕이 가져다주는 외로움에 몸서리를 치고 말았다. 뉴욕의 30대 전문직 싱글여성 네 명의 사랑 이야기를 농도짙게 그려 큰 인기를 끌고 있는 HBO 코믹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Sex and the City)’의 한 장면이다.

미국의 독신가구는 1960년 전체의 13%였던 것이 2000년 인구센서스 결과 2배인 26%로 늘어났다. 뉴욕 일대에 사는 남녀 싱글이 무려 300만명. 이들이 빚어내는 무수한 이야기는 누가 다 들어줄까.

토요일 밤 뉴욕. ‘언니 직장 동료의 이웃에 사는 남자의 동생’을 소개받아 잘 모르는 남자를 만나러 가던 일은 까마득한 옛날옛적의 일이다. 룸메이트의 데이트에 끼어들어 ‘눈치의 더블데이트’를 감행하는 것도 20세기와 함께 사라졌다. 요즘의 싱글 뉴요커들에겐 여러가지 선택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맨해튼의 일본계 은행에서 일하는 중국계 징 리(25)는 3개월 전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새 애인을 찾고 있다. 그녀는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현실과 똑같다고 느낀다. “진짜 멋진 데이트는 ‘약속된 데이트’가 아닐 때 이뤄지는 거야.” 드라마 속 캐리의 말처럼 ‘우연히 만난 뜨거운 사랑’을 고대하는 그녀는 뉴욕생활을 즐기기 위해 파티장이나 바를 자주 찾는다.

온라인 데이팅 서비스 회사에 대한 관심도 수년째 높아가고 있다. 뉴욕 컬럼비아대 언론대학원에 다니는 금발의 싱글 케이트 우라넥(43)은 작년 한달에 12.95달러씩 내고 1년간 매치닷컴(www.match.com)에 가입했던 이야기를 이 학교 학생들이 만든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소개받은 남자들과 10여차례 데이트한 후 보이프렌드를 구했던 우라넥씨는 “한달 회비가 영화 한편과 과자 값 정도여서 ‘떼여도 그만’이라고 생각해 가입했는데 돈 낸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한 리서치회사에 따르면 미 전역에 회원 250만명을 두고 있는 매치닷컴을 비롯해 데이팅 서비스 웹사이트가 1500개에 이르며 작은 사이트들이 수없이 생겨났다 없어진다고 한다. 데이팅 서비스 시장규모가 1998년 10억달러에서 올해 15억달러로 커질 것이란 분석도 있다. 과거엔 이런 회사 서비스를 이용하면 ‘능력없다’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렇지만 요즘은 각종 설문분석을 통해 최적의 커플을 찾아준다는 기대감에 이용자가 늘어나고 있다.

얼굴을 맞대고 상담해주는 중매회사도 여전히 성업중이다. 동양인 유대인 등 인종별로 전문회사가 따로 있다. 이름을 크리스틴이라고만 밝힌 아시안아메리칸클럽이라는 중매회사의 카운슬러는 “회비는 300달러이며 회원들이 짝을 찾을 때까지 소개해준다”고 말했다. 회원은 아시아계 여성 2000명, 미국인 위주의 남성 1000명이라는 것. 이 회사가 매달 개최하는 싱글파티에는 2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룬다고 크리스틴씨는 설명했다.

주말이면 식당이나 바, 호텔 연회장 등에서 싱글 파티가 펼쳐져 싱글 남녀들이 공통관심사를 향해 화제를 좁혀간다. 외로움을 즐기는 싱글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아파트에서 새벽까지 열리는 맥주나 와인을 곁들인 싱글파티도 인기다. 파티 주최자와 가까이 지내는 남녀들이 격식을 차리지 않고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홍권희

결혼상대, 그냥 친구, 운동을 함께 할 친구, 동성 친구 등 짝을 찾는 남녀의 개인광고가 지천에 널려 있다. 심지어 뉴욕 타임스도 최근 데이팅 광고를 취급하기 시작했다. 일요일자 개인광고를 통해 기본료 2달러, 1분에 2.99달러씩에 녹음된 자신의 소개말을 남겨놓으면 이성 또는 동성의 연락을 받을 수 있다.

싱글들을 위해 그릇도 필요없는 간편한 한끼식사가 준비돼 있다. 42가 그랜드센트럴역의 간편식 판매점 와일드 에더빌스에선 조리된 연어데리야키와 같은 7.95달러짜리 메뉴가 가장 인기다. 다른 메뉴는 5∼10달러 선. 돈을 아끼려면 슈퍼마켓을 찾아 5달러 안팎의 냉동포장된 음식을 살 수 있다. 파스타나 볶음밥 등을 사다 전자레인지에 데워 혼자 TV를 보면서 먹는다고 해서 ‘TV디너’라는 별명이 붙었다. 뉴욕의 싱글들이 싫어하는 식사다.

경제잡지 포브스가 매년 발표하는 ‘싱글이 살기 좋은 40개 도시’를 보면 작년엔 보스턴이 1위, 뉴욕은 11위였다. 그렇지만 포브스측은 “뉴욕이야말로 사실상 싱글들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이라고 부연설명을 해놓고 있다. 뉴욕이 ‘수많은 식당 박물관 투자은행 나이트클럽 모델회사들이 있고 명성과 돈을 찾아 몰려드는 싱글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나눠받을 수 있는 곳’이란 이야기다. 뉴욕의 순위가 낮은 것은 맨해튼 외에 퀸스 등을 포함해 시 전체로 평가를 했기 때문이다. 뉴욕의 부문별 점수는 나이트 라이프는 미국내 1위, 문화적 매력은 3위, 동료 싱글 숫자 3위였다. 나쁜 것은 비싼 물가(39위), 적은 일자리(40위).

미니애폴리스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프린스턴과 뉴욕, 시카고를 거쳐 현재 노스캐롤라이나주 윈스턴 세일럼에 사는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 정치학교수인 싱글, 피트 퓨리아(31)는 1년에 두어차례 뉴욕을 방문한다. ‘얼굴이 다른 도시’ 뉴욕이 그리워서. 그는 “어느 도시에나 있는 따분한 쇼핑몰과 점포들 대신 뉴욕에는 싱글들이 즐길 만한 개성있고 독특한 곳이 많다”고 말했다.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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