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맹성렬/예산 중복투자 아껴 지방대 육성을

  • 입력 2003년 2월 2일 18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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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최근 지역순회 토론회에서 지방대 육성을 강조하고 있다. 심지어 그는 대구에서 “대학투자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거의 지방에만 할 것”이라고까지 했다. 물론 그만큼 지방대에 신경 쓰겠다는 노무현 식 강조화법이겠지만 서울지역 대학, 특히 서울대 사람들의 간담이 서늘해질 만한 얘기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비책(秘策)이 있다. 대학 연구개발비라는 파이를 지금보다 4∼5배 키우면 된다. 기존 서울 지역에 지원되는 것은 그대로 놔두고 지방대에 그보다 많은 연구개발비를 지원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재원을 어디서 구할까. 노 당선자는 대선 기간 중 각 부처의 거품을 빼고 중복투자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누차 강조했다. 김대중 정부에서 여러 과학기술 유관부처가 생산기술 연구개발에 집중 투자를 했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슬로건 아래 각 부처는 돈이 될 만한 분야에 매달렸다. 당장 큰 이익을 낼 수 있는 산업은 뻔하므로 중복투자는 필연적이었다. 이런 잘못된 투자를 바로잡아 이제는 지방대 육성을 위한 연구개발비로 사용하자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대학의 연구개발은 기초연구와 원천기술 개발이 주축을 이뤄야 한다. 당장 눈앞의 이익과는 거리가 좀 있지만 중장기적인 투자에 의미가 있다. 노 당선자는 지방의 산업체가 필요로 하는 연구과제를 대학이 수행하고자 할 경우 연구개발비를 중앙부처에 달라고 요청하면 과감히 지원해 주겠다는 얘기를 했다. 어느 정도 일리는 있지만 대학 본연의 교육적 역할을 생각하면 굳이 산업과 연계시키지 않고도 대폭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 그런 지원자금은 기존의 잘못된 연구개발 투자를 바로 잡음으로써 마련할 수 있다.

특히 ‘지방대 구하기 작전’에 필요한 자금을 국방비에서 상당부분 수혈받을 수 있다. 올해 예산을 보면 국방비 중 전력 투자비는 과학기술비보다 많다. 하지만 이 비용은 10% 정도밖에 국방 연구개발비로 쓰이지 못한다. 나머지 90%는 외국에서 무기체계를 구매하는 데 주로 쓰인다. 국방 연구개발 하면 대포 만들고 미사일 만드는 것만 생각하기 쉬운데 실은 현재 이공계 대학에서 수행하고 있는 대부분의 연구개발이 여기에 해당한다. 미국에서 국방비 중 상당액이 대학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전력투자비 중 연구개발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30%까지 끌어올리면 1조원 이상의 연구개발비를 지방대에 공급할 수 있다. 현재 몇 개 학교에만 지정 운용되고 있는 특화연구센터를 지방대에도 확대 설치해야 한다. 비슷한 논리로 국가정보원 예산에서 상당액이 정보기술(IT) 관련 연구개발비로 대학에 지원될 수 있다.

새 정부가 진정으로 과학기술 혁신을 원한다면 기존의 과학기술부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뿐만 아니라 국방부 국정원과 같이 국가적으로 큰 규모의 연구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관련 부처의 이기주의를 제어하고 조율해 충분한 재원이 연구개발에 합리적으로 투입될 수 있도록 강력한 리더십을 대통령이 발휘해 주어야 한다. 과학기술계에서 과학기술 수석이나 IT수석을 요구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맹성렬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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