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산책]이영이/의회서 뺨맞고 민심은 얻고…

  • 입력 2002년 9월 2일 18시 36분


현민(縣民)이 뽑은 지사와 현의회 의원 중 누가 민심을 더 잘 읽고 있는 것일까.

1일 일본 나가노(長野)현에서 실시된 현지사 선거에서 7월 현의회의 불신임으로 지사직에서 물러났던 다나카 야스오(田中康夫·46) 전 지사가 재선됐다.

작가 출신인 다나카 지사는 2000년 10월 ‘무당파(無黨派) 돌풍’을 일으키면서 최연소 지사에 당선된 인물. 취임 후 불필요한 댐 공사를 중단하겠다며 ‘탈(脫)댐 선언’을 하는가 하면 ‘투명 현정(縣政)’을 내걸고 자신의 집무실을 투명유리로 꾸미는 등 숱한 화제를 낳은 장본인이다.

그가 불신임을 받게 된 이유는 지사가 되기 전에 이미 계획이 확정돼 건설 중이던 댐 공사를 중지시키려 했기 때문. 그는 “공사 중이라고 하더라도 불필요한 댐은 건설하지 않아야 한다”며 의회와 맞섰다가 결국 물러났다.

그런 그가 다시 출마해 재선된 것. 선거운동 과정에서 5명의 상대 후보들은 일제히 “현민이 뽑은 의회와 협력해 현정을 원만하게 꾸려가겠다”는 선거공약을 내놓았지만 다나카 후보는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을 집중 공격했다.

선거 결과 다나카 후보는 지난번 선거 때보다 23만표나 많은 82만2897표를 얻어 2위인 여성 변호사 하세가와 게이코(長谷川敬子·50) 후보를 두 배 이상의 표차로 눌렀다. 투표율도 73.78%로 지난 선거의 67.57%보다 훨씬 높았다.

이 같은 선거 결과에 대해 ‘반(反) 다나카’를 내걸었던 현의회의 최대 파벌 현정회(縣政會)측은 “의회민주주의의 존망을 걸고 지사 선거에서 싸웠으나 패배를 솔직히 인정한다. 현민들에게 폐를 끼친 것을 사과한다”며 머리를 숙였다. 의원 두 명은 “민의를 제대로 읽지 못한 책임을 지겠다”며 2일 사직원까지 냈다.

다나카의 재선이 새삼 보여주는 것은 민의(民意)의 힘이다. 누가 옳은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유권자다. 나가노현 현민들이 보여준 민의의 위력은 12월 대선을 앞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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