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윤용규/체벌 허용 앞서 교육환경 개선을

  • 입력 2002년 7월 21일 18시 15분


학교의 학생 체벌 문제가 거론되는가 했더니 어느새 국민의 관심 밖으로 벗어난 듯하다. 학생들은 우리의 자녀들이자 또 장차 나라를 경영할 후속세대라는 점에서, 이들의 교육 현장의 일이 일과성 뉴스로 가볍게 다루어진 것 같아 안타깝다.

지난달 26일 교육인적자원부는 ‘학교생활규정 예시안’을 발표했다. 그 가운데 제54조의 매질(체벌에는 매와 기합이 있음)에 관한 규정이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매의 길이와 지름, 재질과 모양, 그리고 매질의 부위와 횟수까지 상세히 규정함으로써 교육 주체들로 하여금 이질감을 느끼게 한 탓이다. 때문에 교사들은 과연 교육현장에서 이 규정을 지키라고 만들어 놓았는가 하는 깊은 회의에 빠졌으며, 학생과 학부모는 교육부가 공식적으로 매질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예시안 제54조는 3월 교육부가 내놓은 ‘공교육 내실화 대책’ 가운데 하나인 ‘학생 교육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 사랑의 회초리를 들 수 있다’는 방안을 구체화한 것이다. 이 방안은 다시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 체벌을 허용한다’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31조 7항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니 교육부가 그동안 존재하지 않던 학생 체벌을 새삼스럽게 허용하려고 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일개 정부 부처가 어느날 한마디함으로써 금지되었던 매질이 부활되거나 새로이 허용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교육부는 다만 시행령의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를 구체화하고 보완하려고 했을 뿐이다. 즉, 교육현장에서 긴급하고 불가피할 때 인정되는 ‘체벌상황’을 ‘특수하고 예외적인 상황으로 제한 해석’함으로써 체벌의 필요조건을 더욱 엄격히 했으며 나아가 충분조건으로서 체벌 수단의 균형성과 적합성을 요구했다. 이 조건들이 충족될 때 비로소 교육상 허용되는 ‘사랑의 매’가 성립된다. 그동안 법원에 의해 정당화된 매질도 바로 이런 경우들이다. 따라서 매질의 적합성을 높이려 한 제54조의 시도만큼은 인정할 만하다.

하지만 이 시도는 체벌에 관한 한 교사에게 아예 재량의 여지를 남기지 않음으로써 입법의 영역을 넘어 과잉 입법으로 나아갔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예시안대로 한다면 매를 든 교사는 로봇에 가깝게 되기 때문이다. 체벌은 본래 관습법의 세계에서 인정되어왔으므로 그 인정 범위 역시 사회인식의 변화에 맡겨두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교육부가 진정 학생체벌을 걱정한다면, 이런 식의 작위적인 입법이 아니라 체벌상황의 근원적인 예방에 더 큰 관심을 두어야 한다. 왜 학생들이 학칙을 위반하는가, 위반을 조장하는 비현실적인 생활규정은 없는가, 이른바 ‘문제학생’은 본래부터 문제학생인가, 학교시스템은 청소년의 의식변화를 제대로 수용하고 있는가, 교과서는 정말 필요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는가, 교육주체 간의 의사소통은 원활한가 등 수없이 많은 의문들을 푸는 노력이 더 절실하다. 그러므로 교육부는 ‘단지 예시안일 뿐…’이라고 물러설 것이 아니라 이와 같은 논의에 한걸음 더 다가가야 할 것이다.

윤용규 강원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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