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김국태/국민은 합리적 사회를 갈망한다

  • 입력 2002년 6월 26일 19시 01분


강인한 체력, 빠른 스피드, 상대 골문을 끊임없이 위협하는 공격전술, 그리고 때가 되면 상대의 골문을 가로지르는 슛. 온 국민은 한날한시에 전국 방방곡곡에서 한마음으로 우리 대표팀의 모습에 열광하고 승리를 염원하며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쳤다. 승리를 위한 열광과 염원 앞에 모든 갈등이 사라진다.

축구를 놓고 왜 이런 열광이 솟아나는가. 이 열광의 진상은 무엇일까. 단순히 단조로운 일상으로부터 일탈을 시도하는 축제적 감성의 발로인가. 그러나 축제로만 보기에는 너무나 도전적이고 집단적이다. 이 열광은 축제 이상의 그 무엇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흥미로운 사실은 축구에 대한 열광은 공교롭게도 거의 같은 시각 진행되고 있는 정치 사회적 현실에 대한 태도와 뚜렷이 대비되고 있다는 것이다. 권력과 비리, 정쟁으로 만신창이가 된 정치 현실에 대해 국민은 무관심하다. 지방선거는 사상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했고, 선거 결과 한나라당이 대승을 거두었다고 하지만, 그것에 대해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심리학적으로 대리만족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충족되지 못한 욕구를 다른 유사 대상을 통해 충족시키는 심리적 기제다. 축구에 대한 국민적 열광과 단합된 행동은 국민적 염원을 외면하고 있는 우리의 사회와 정치 현실에 대한 대리만족으로 풀이될 수 있을 것 같다.

축구를 통한 대리만족은 4강 진입이라는 대표팀의 기록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대표팀 거스 히딩크 감독에서는 배가된다.

이젠 익히 들어 알고 있는 것처럼 경력이나 배경을 무시한 그의 능력 위주의 선수 선발, 과학적 훈련 방법, 그리고 장기적 목표 설정과 그 단계적 실현. 오늘의 한국 축구는 이런 방법의 체계적 운영의 결과인 것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능력이 아니라 학연 지연 혈연 등 연고주의와 권모술수가 정도처럼 되어버렸다. 국가 권력이 개인적 축재수단으로 오용되고, 국가 대사가 지역감정과 당리당략으로 농락되고 있다. 이처럼 능력과 성실이 보상받지 못하고, 정의가 서지 않는 현실에서 어느 국민이 애국심을 가질 수 있겠는가.

우리는 히딩크의 축구에서 바로 그 반대 사례를 경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히딩크의 축구를 보고 열광하고 대리만족을 하는 것은 그런 축구를 가능하게 한 그의 합리적인 운영방식 때문이다.

위정자들은 국민적 열광을 기본과 원칙이 서는 조국에 대한 열망으로, 동시에 우리의 피폐한 정치 현실에 대한 저항과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우리가 진실로 축구를 통해 나타난 국민적 에너지를 국민 통합과 국가 도약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국민적 열망의 진상을 냉철히 파악하고 우리 스스로를 반성하는 이성적 작업이다. 국민적 열망의 핵심은 원칙과 기본이 서야 한다는 가장 단순하고도 상식적인 진리에 다름 아니다.

김국태 호서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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