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칼럼]타는 목마름

  • 입력 2002년 6월 21일 18시 03분


98년 7월9일 프랑스월드컵 프랑스-크로아티아의 준결승전. 팽팽한 공방전 끝에 크로아티아는 후반 시작 27초 만에 슈케르가 선취골을 뽑는 데 성공했다. 프랑스 수비수 튀랑이 순간적으로 슈케르를 놓친 게 결정적이었다.

그러나 프랑스는 놀랍게도 실점 1분 만에 동점골을 넣었다. 그 주인공은 다름아닌 수비수 튀랑. 그는 그때까지 4년 동안 국가대표끼리 가진 A매치 38경기에서 단 한 골도 넣은 적이 없었다.

놀라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후반 25분, 전술도 무시하고 미친 듯이 크로아티아 진영 왼쪽을 돌파한 튀랑은 왼발 대각선슛으로 다시 한번 골 그물을 갈랐다.

프랑스의 2-1승리. 지단, 앙리 등 동료들은 이날 튀랑의 이런 ‘광기’에 모두 깜짝 놀랐다. 튀랑은 평소 팀에서 모범생 중의 모범생. 평소 말도 별로 없었다.

축구는 11명이 한다. 그러나 말 잘 듣는 11명의 모범생만 있는 팀은 팀이 위기에 빠졌을 때 무기력하다.

승리는 승부에 ‘미친’ 선수의 발끝에서 나온다. 히딩크가 부임 초기 “때로는 사고뭉치가 필요한데 아무도 악역을 떠맡으려 하지 않는다”고 개탄한 것도 다 이런 뜻이다. 히딩크는 그런 대표적인 선수로 네덜란드대표팀의 다비즈를 꼽는다.

그렇다면 ‘미친 선수’는 몇 명이나 필요할까. 트루시에 전 일본대표팀 감독은 “8명의 모범생에 3명의 광기(狂氣)를 가진 선수가 있어야 비로소 평소에 볼 수 없었던 힘이 발휘된다”고 말한다.

한국팀의 최대 강점은 바로 이 ‘타는 목마름’으로 승리를 갈구하는 선수들이 많다는 것이다. 어느 경기에서든 1, 2명은 꼭 나온다. 한국팀엔 이렇다할 스타가 없다. 그러나 11명 개인의 총합은 11이 아닌 20도 되고 30도 된다.

이탈리아팀엔 이런 ‘열정’이 보이지 않는다.겉멋에 으스대는 ‘축구 기술자들’만 가득하다. 그래서 지고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질질 짜는 마마보이들처럼 사사건건 떼를 쓴다. 쩨쩨하다. 아무래도 이탈리아 선수들은 축구를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할 것 같다.

김화성 스포츠레저부 차장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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