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봄은 왔으나 봄같지 않은 쾰른

  • 입력 2002년 3월 11일 17시 02분


독일은 봄이 늦다. 위치상 유럽의 중앙에 있어 서안 해양성 기후와 동유럽의 대륙성 기후의 영향을 받는데, 엄밀히 말하면 둘의 단점이 합쳐진 기후이다. 온난습윤한 서쪽 기후의 영향과 차가운 동쪽 기후의 영향이 합쳐지며, 독일의 3월은 전반적으로 찬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겨울과 다를 바 없는 날씨의 연속이다.

물론 달력 상으로 정확한 독일의 봄은 춘분일인 3월 21일 시작한다. '봄의 시작(Fruehlingsanfang : 프륄링스안팡)'이라는 날이 바로 이 날이다. 그러나 진정한 독일의 봄은 5월부터 시작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 이전에는 두터운 스웨터가 필요하고, 6월이라 해도 겉에 걸쳐 입을 옷을 준비하곤 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독일 정신의 아버지 괴테가 싱싱한 젊음의 계절이라며, 그토록 찬미해 마지않던 봄은 어느 날 하루 아침에 짠-하고 시작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이 자연의 변화처럼, 녹아 물기를 머금고 부드러워져야 봄이 왔다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러나 모든 분데스리가의 팀들이 봄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실 26룬데가 끝난 현재, 12위인 한자 로스토크 밑으로 여섯 팀, 그러니까 총 일곱 팀은 모두 언제든지 2부리가로 내려갈 가능성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승점이 30점을 못 넘고있는 이 일곱 팀들에게 그 문은 활짝 열려있는 셈이다. 아직도 이들은 추운 겨울 같은 3월이 잔인하게 느껴질 것이다. 13위 보루시아 묀셴글라드바흐는 승점 27점, 14위 에네르기 코트부스 또한 승점 26점으로 오십보 백보의 꼴이지만, 묀셴글라드바흐는 전통의 명문 클럽으로서 역대 전독일 클럽랭킹 7위에 올라있는 강호인데다 팀 분위기 또한 그렇게 절망적이지만은 않은 상황이며, 로스토크와 코트부스는 최근 몇 시즌 그들이 보여줬던 피눈물 나는 끈질긴 생명력을 믿기에 과소평가하고 싶지 않다.

따라서 필자는 '하강지위(Abstiegsplaetze : 압슈틱스플레쩨)'의 현 세 팀인 꼴찌 쾰른, 장크트 파울리, 프라이부르크와 그 바로 위의 15위 팀 뉘른베르크를 봄 같지 않는 봄을 맞이하는 가장 절박한 팀으로 전제하고 싶다. 이들은 모두 2부 분데스리가로 내려가는 하위 세 팀에게 주어지는 하강지위에 간당간당 걸려있는 위기의 팀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문제는 필자가 이번 17번째 칼럼에서 씹을(?) 쾰른이다.

현재 리가 꼴등을 기록 중인, 그래서 2부 리가 입성 0순위인 쾰른을 보면 너무도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고대 로마의 식민시(植民市 : colonia) 가운데 하나였던 이 유서 깊은 도시는 그 이름을 물려받으며, 10∼15세기에는 독일 최대의 도시로 번창하였다. 중세에는 북·서 유럽에서의 수륙교통·상업의 중심지로서 번영하여 한자동맹에 소속되기도 했었다. 이 도시의 클럽인 FC 쾰른의 면모와 성적 또한 그 역사와 걸맞은 데가 있었다.

1948년에 창단된 비교적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역대 전독일 클럽랭킹 4위에 올라있을 만큼 그들의 성적은 '꾸준한 상위권' 그 자체였다. 1961/62, 63/64, 77/78 시즌엔 분데스리가 마이스터에 올랐고, DFB포칼에서도 1967/68 시즌 우승을 필두로 76/77, 77/78 시즌엔 연속 우승을 이루어냈고, 82/83 시즌엔 포르투나 쾰른에 1:0으로 이기며, DFB포칼 결승에서 최초로 더비팀끼리 격돌한 장본인이 되었다.

쾰른은 그만큼 독일 축구를 빛내온 축구영웅들을 길러낸 팀이기도 하다. 우선은 독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평가 받고 있으며, `90 월드컵에서 오른쪽을 도맡아 우승을 일궈낸 멤버인 피에르 리트바르스키가 있다. '작은 리티'라 불리던 그는 쉽게 말하자면 독일판 가린챠였다. 그는 빠르고 현란한 드리블은 물론, 위태로운 궤적을 그리던 살벌한 크로싱, 각도에 관계없이 날리던 중거리 슛으로 아직도 축구팬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요새 축구팬들은 등 번호 '7'하면 베캄이나 피구, 라울, 숄을 떠올리지만, 필자처럼 독일 축구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팬들이라면 `82, `86, `90 월드컵을 거치며 총 18회의 월드컵 경기를 뛰었던 그를 떠올릴 것이다. 지금은 2부 분데스리가의 뒤스부르크에서 감독을 맡고 있다. 그리고 80년대 대표팀 골키퍼였고 '토니'란 애칭으로 불렸던 하랄트 슈마허가 있다. 그는 결승에서 두 번이나 졌던 모진 운명의 스타였는데, `86 멕시코 월드컵 결승에서 마지막에 아르헨티나의 부루차가에게 통한의 결승골을 먹었던 그 선수이다. `74 서독 월드컵의 우승멤버이자 70년대 쾰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천재적인 게임메이커 볼프강 오베라트도 쾰른출신의 선수이며, 플라티니가 '그의 플레이를 보고 경외감이 들었다'라고 술회했었고 에스파냐의 명문 FC 바르셀로나의 주장완장을 차고 80년대 독일 국가대표로 뛰었던 베른트 슈스터도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현 21세 이하 국가대표팀을 맡고 있는 한네스 뢰어 감독도 쾰른에서 504경기에 출장해 166골을 넣은 스타였다.

하지만 쾰른의 이번 성적은 너무도 초라하다. 그들은 이번 시즌에 단 세 번만을 이겨봤을 뿐이다. 2, 5, 14룬데에서 이겼을 뿐, 작년 11월말 이후 단 1승도 올리지 못하고 있다. 작년 12월 1일에 도르트문트와 가졌던 15룬데 홈경기서부터 지난 2월 23일 뉘른베르크에서의 24룬데 원정경기까지, 그들은 득점조차 올리지 못했다. 덕분에 21세 이하 대표팀에서 뛰며, 슈투트가르트의 힐데브란트와 함께 차세대 성인 대표팀 골키퍼로 거론되는 79년 생의 마르쿠스 프뢸은 아주 혹독히 분데스리가를 배워가고 있다. 쾰른은 26룬데 현재 리가 최하 득점(13점)을 기록 중인데, 그 다음인 코트부스의 24점에도 비교가 안되는 너무나 빈약한 공격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프뢸이 키커 평점 2.77의 높은 기록을 보여주며, 자신의 플레이만으로 보면 너무나 잘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스위퍼 토마스 치혼의 수비리딩도 그리 불안하진 않아 보인다. 독자들도 분데스리가 경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그는 뛰어나진 않지만 버릴 구석 하나없는 전형적인 독일 스위퍼 스타일의 수비수이다.

그의 좌우에 서는 투 스토퍼는 모두 용병인데, 국가대표에 소속된 재원들이다. 왼쪽은 너무나 유명한 불굴의 사자 카메룬의 주장인 리고베르 송이고, 오른쪽은 스위스 국가대표 스토퍼인 마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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