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외국에서 통할 선수는

  • 입력 2002년 3월 11일 17시 00분


이번 글은 지난번 글과는 완전히 반대 방향의 내용이다. 지난 글에서 '한국에서 통할 외국인 선수'를 얘기했는데, 이번의 내용은 '외국에서 통할 한국 선수'이다.

예전부터 한국 프로야구의 수준은 마이너 리그 AA 정도로 평가되어 왔다. 98년 이후 국내에서 뛰고 있는 외국인 선수들의 성적과 지난 올림픽에서의 경기 내용 등을 통해 미루어 볼 때 그 평가에 큰 문제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예전의 평가에 충분한 근거가 있었는가는 매우 의심스럽지만). 한국 리그의 수준을 AA급이라고 보면 한국 리그의 최고 선수들은 메이저 리그에서도 통할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통할 가능성이 있다'이지 '반드시 통한다'는 아니다. 같은 AA 등급에서 비슷한 성적을 올린 선수라도 메이저 리그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많고, 눈길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 차이를 낳는 원인은 많이 얘기되는 '150km/h의 공을 못 쳐서, 에이스 투수에게 약해서, 체격이 작아서'보다는 다른 것에 있는 경우가 많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성장 가능성이고, 이를 판별하는 제일 큰 기준은 선수의 나이이다. 한국에서 뛰는 외국인 선수 중 상당수는 여기서 걸린 경우이다(우즈, 호세 등은 AAA에서 뛰어난 성적을 올릴 수 있는 선수이다). 또한 체격, 운동 능력 같은 신체적 조건도 성장 가능성을 판단하는 데 유용하다. 또 높은 단계에서 적응에 실패하는 선수도 있다. 타자의 경우 대부분은 '볼을 골라내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뛰어난 운동 능력을 지닌 성장 가능성 높은 유망주가 실패하는 경우 대부분 이 문제이다. 그 외에 변화구 대응 능력이 문제가 되는 경우도 꽤 있다(지난해 한국에서 뛰었던 J.R.필립스가 이런 경우라고 한다). 투수의 경우는 컨트롤과 커맨드가 뛰어나지만 구위가 떨어지는 선수가 한계에 부딪치는 경우가 많다. 한편 투수는 타자에 비해 불확실한 부분이 많은 편이다.

알아둬야 할 것은 메이저 리그나 일본 리그라고 해서 야구가 특별하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수준 차이가 있고 스타일의 차이가 있지만, '야구'와 '야큐', '베이스볼'이 다른 스포츠인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서, 한국에서 잘 하는 선수가 미국 또는 일본에서도 잘 할 가능성이 더 높다는 뜻이다.

그럼 해외 진출이 거론되는 몇몇 선수들에 대해 검토해 보기로 하자.

이승엽

이승엽은 21살 때인 97년부터 3년간 .329/.391/.598, .306/.404/.621, .323/.458/.733의 성적을 올렸다. 타자들에게 유리한 대구 구장을 감안하더라도 AA 레벨에서 23세에 리그 평균보다 50% 뛰어난 OPS를 기록한 타자라면 최고의 유망주로 꼽힐 만하다.

아마도 이승엽의 해외 진출은 이 때가 적기였을 것이다. 이후 2년간 이승엽은 전혀 발전한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리그 OPS를 .750으로 가정했을 때 이승엽의 97~99년 OPS를 환산하면 1.022, 1.054, 1.126이다. 반면 2000년과 2001년에는 각각 0.963, 0.961에 그쳤다. 물론 99년 이후의 타고투저가 한 가지 원인이다. 리그 평균의 차이를 무시하면 이승엽의 97,98년 OPS 0.988, 1.024와 2000,2001년 OPS 1.008, 1.017은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또 한 가지 원인이 있다. 장타와 볼 넷에서 지난 2년간 이승엽은 97,98년보다 향상된 면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나아지지 않은 이유는 타율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97~98년 동안의 타율이 .318인 반면 2000~2001년의 타율은 .285에 불과하다. 지난 2년간 .318을 쳤다면 그의 OPS는 1.012가 아니라 1.074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삼진도 늘어났다. 98년 이후 그의 삼진 수는 97,114,113,130이다. 그의 지속적인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요소는 떨어지는 타율과 늘어나는 삼진, 즉 타격 정확도의 저하로 여겨진다. 이승엽은 자신의 문제점을 제대로 짚어낸 셈이다.

진필중

진필중은 99년 피안타율 .206에 114이닝 동안 114탈삼진에 37볼넷만을 내주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다음해인 2000년 진필중은 한 시즌 최다 세이브 기록을 세웠지만 피안타율은 .206에서 .240으로 높아진 반면 9이닝당 탈삼진 개수는 9.00에서 7.52로 떨어졌다. 타자를 압도하는 능력이 떨어졌다는 뜻이다. 지난 시즌에는 탈삼진 비율은 회복됐지만 피안타율은 더 높아졌으며(.256) 컨트롤에서도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9이닝당 볼넷이 4개가 넘는다는 것은 좋지 않다(진필중의 통산 BB/9IP는 2.65이다).

진필중의 빠른 공은 메이저 리그에서 타자를 압도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은 아니다. 정교한 컨트롤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태의 진필중은 한국에서도 'untouchable'이 아니다. Baseball America에서 진필중을 평가한 글 중 이런 구절이 있다: 'It sounds like he could help a major league club out of the bullpen, though that may not happen until 2003.' 개인적으로도 이에 동의한다(그리고 다른 의미에서겠지만 결국 그렇게 됐다).

이종범

한국 프로야구에서 이종범은 두말할 필요 없는 최고의 선수였다. 그러나 일본 프로야구에서의 3년 반 동안 이종범은 반 가까이 결장했던 첫 시즌을 제외하면 평범한, 혹은 그 이하의 선수였다. 한국 프로야구와 일본 프로야구의 수준 차이가 그렇게 큰 것일까? 내 생각으로는 아니다. 98년과 99년 이종범은 모든 면에서 차이를 보였지만 주목할 것은 타수와 볼 넷, 삼진의 비율이다.

98년 이종범은 244타석에서 36볼넷, 33삼진을 기록했다. 99년에는 424타석에서 38볼넷, 62삼진이고 2000년에는 414타석에서 28볼넷, 70삼진. 선구안이 급격히 무너진 것이 눈에 띈다. 투수들의 수준 차이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부상 전의 첫 시즌에 뛰어난 능력을 보였던 것을 감안하면 그렇게만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사실 그의 첫 시즌 성적은 내 예상과 매우 가까웠다).

이종범의 부진에는 오히려 심리적인 문제가 크게 작용한 듯하다. 선구안 관련 지수는 타율이나 홈런처럼 매년 심한 차이를 보이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또한 부상 이후 몸쪽 빠른 공에 대해 예전 이상으로 약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을 감안할 때 조급함과 압박감이 그의 성적 하락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이종범은 다른 리그로 무대를 옮기는 데 필요한 것은 실력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병규

이병규는 매우 뛰어난 재능을 갖춘 선수이다. 문제는 아직까지 그 재능이 야구를 잘 하는 것과 직접 연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시즌까지 이병규는 3시즌 연속 리그 최다 안타를 기록했다. 얼핏 봐서는 좋아 보인다. 그러나 99년 커리어 시즌을 보낸 뒤 성적은 뒷걸음질치고 있다. 지난해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 47명 중 28명이 이병규의 OPS .818보다 나은 성적을 올렸다.

모두가 알다시피 그의 문제는 볼을 고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맞추는 재능이 뛰어난 선수라 삼진은 많지 않지만 나쁜 공에 방망이가 나가는 경우가 많으면 결과는 좋게 나타나기 어렵다. 나쁜 공을 쳐서 안타를 만들려고 들기보다 좋은 공만 치고 많이 걸어나가는 것이 팀에게나 개인에게나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한 이병규가 정말로 대단한 선수가 되기는 어렵다. 볼을 고르지 못하는 타자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성공하지 못한다. 이병규가 특별한 선수? 글쎄. 이병규는 올해로 28세가 된다. 성장할 수 있는 기회는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임창용

최근 수 년간 진필중이 많은 세이브를 올리면서 주목받았지만 실질적으로 더 뛰어난 투구 내용을 보인 투수는 임창용이다. 주전 마무리투수를 맡은 97~2000년 사이 임창용은 매년 .200 이하의 피안타율과 9이닝당 2.4개 이하의 볼 넷을 기록했고 97년을 제외하면 이닝당 1개 이상의 삼진을 잡아냈다. 더구나 그의 홈 구장은 타자들에게 유리한 대구와 광주였다.

성적 외의 면에서도 임창용에게는 어드밴티지가 있다. 진필중보다 4살 어린 나이와 미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사이드암 투구폼 등은 스카우트들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한 요소이다.

한편 그는 지난 시즌 성공적으로 선발투수로 전업했지만 몇 가지 불안한 점을 보였다. 피안타율 .242는 여전히 리그 최정상급이지만 이전에 비해 큰 차이이다. 또한 9이닝당 삼진 개수도 2000년보다 3개나 줄어들었으며 이전 4년간 내준 홈런 수보다 더 많은 25개의 홈런을 허용했다. 눈으로 봐도 지난해의 구위는 예전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선발투수로 역할을 바꾸는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어린 나이부터 많이 던져 왔다는 것과 구위를 오랫동안 유지한 잠수함투수가 드물다는 것 등은 위험 요소이다. 임창용의 가치는 올 시즌의 활약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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