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盡人事 待天命

  • 입력 2001년 12월 3일 17시 28분


12월 1일 드디어 2002 한/일 월드컵의 조편성 추첨이 부산에서 열렸다. 험난한 지역예선을 뚫고 올라온 서른 두개의 나라들의 운명이 갈리는 시간. 예전부터 이런 뽑기에 좋지 않았던 한국에게 행운은 또다시 오지 않았다. 시드에 배정되어 세계 최강 팀과 한조가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어찌 보면 역대 월드컵 사상 가장 유리한 여건이었건만 불행히도 한국이 속한 D조에는 충분히 시드를 받을 자격이 있으면서도 시드를 받지 못한 FIFA 랭킹 4위의 포루투갈이 걸리고 말았다. 포루투갈이 확정되자 BEXCO 행사장에는 '아~'하는 탄성이 퍼져 나왔고, 비가 오는 와중에서도 마로니에 공원에 모여서 구경하고 있던 붉은악마들은 손으로 얼굴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 중계를 맡고 있던 KBS와 MBC 양 방송국의 아나운서와 해설자들 역시 순간적으로 "어.. 어.." 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거기다가 축구의 신은 다시 한번 한국의 손을 들어 주는 것을 거부했다. 유럽팀에 약한 한국의 조에 유럽팀이 한 팀만 걸릴 확률은 25%. 미약한 확률이나마 걸리기를 기원했지만 축구의 신은 매정했다. 한국의 다른 파트너는 폴란드. 유럽예선에서 맨 처음 본선진출을 확정 지었으며, 74년과 82년 월드컵에서 3위까지 올라간 적이 있는 동유럽의 강호 폴란드가 한국의 스파링파트너가 되었다. 그나마 마지막에 나이지리아나 멕시코가 올 수도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오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한국의 입장에선 결코 좋지만은 않은 조편성표를 받아 들게 되었다. 사실 예전의 월드컵 조편성 보다는 나쁜 편은 아니다. 죽음의 조의 틈바구니에 끼었던 98년 월드컵에 비하면 좋은 편 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벨기에, 러시아, 튀니지와 한조가 된 일본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다. 솔직히 일본은 이번 조 추첨에서 정말 운이 좋았다. 일본에서는 황태자비의 여아 출산이 행운을 불러일으켰다라고 까지 하곤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한번 해 볼만한 팀들과 조를 이루게 되었다.

그래도 사람이 위만 보면 한숨만 나오는 법. 아래를 내려다 보면 우리는 얼마나 운이 좋은지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역대 월드컵 최악의 죽음의 조 - 아니 죽음의 조가 아닌 지옥의 조가 되어버린 F조를 보면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어야 할 것이다. 잉글랜드와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와 스웨덴이 한조가 된 F조는 '이 네 팀이 월드컵 4강 진출 팀이야' 라고 말해도 믿을 만한 팀들이다. F조가 확정되자 조에 속한 나라의 기자들이 프레스 센터에서 'Oh my god~~~' 이라며 머리를 부여잡았다고 하니 더 이상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여하간 서른 두개의 나라의 환호와 탄식을 뒤로 하고 어차피 주사위는 던져졌다. AFC 사이트에서는 "Battle lines drawn!" 이라고 적어 놓았던데, 말 그대로 이제부터가 진짜 월드컵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요행은 더 이상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다. 뭐 사람들 중에는 "폴란드 - 미국 - 포루투갈 의 순으로 조 편성이 되어 있기 때문에 2승을 거둔 포루투갈이 16강, 8강을 위해 마지막 한국전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도 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이지만 조금 지난 유행어로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이다. 94년도에도 똑같은 패턴으로 되어 있었다. 스페인 - 볼리비아 - 독일의 순서였는데, 스페인전과 볼리비아전에서 비겨서 '독일한테 비기기만 하면 16강 가능하다'고 모두다 난리를 떨었지만 왠걸? 독일은 휘슬이 불자마자 노도같이 몰아쳐서 전반에만 세 골을 넣어버리고 말았던 쓰라린 기억이 있건만 모두 다 잊었단 말인가.

결국, 요행을 기대해선 안된다는 말이다. 월드컵이라는 것 자체가 요행을 기대할 만큼 만만한 대회도 아니고, 그래서도 안된다. 뭐 일본쪽 언론들 보니까 벌써 1승과 16강은 기본이고 8강 이상까지 하자는 분위기인 것 같고, 중국도 1승에 꽤나 자신감이 있는 것 같던데, 마치 멋 모르고 떠들어대었던 예전 월드컵때 우리 언론을 보는 것 같아 조금 우습기도 하고 일종의 격세지감 비슷한 것도 느낀다. (그러다가 한번 된통 당하지....)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배정된 세 경기 모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축구는 결국 정직하다. 투자한 만큼, 노력한 만큼의 성과가 나오게 되어 있다. 물론 가끔씩은 '공은 둥글다'라는 말로 표현되는 기적 비슷한 것이 일어나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그 기적도 준비한 사람에게만 나오는 것이고 그러한 기적이 나오게 되는데는 다 타당한 이유가 있다. 정신력이 남달랐다거나 상대방에 대한 연구를 철저히 했다거나 말이다. 진인사 대천명(盡人事 待天命)'이란 고사 성어가 있다.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 다음에 1승을 하고 16강에 오르면 좋은 거고,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거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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