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쟁점토론]한일 어업협정 폐기후 재협상

  • 입력 2001년 10월 5일 18시 37분


《1999년 1월 22일 발효한 한일어업협정의 1차 유효기간(3년) 만료일을 약 4개월 앞두고 이 협정을 폐기하고 재협상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협정 폐기와 재협상을 주장하는 측은 한일어업협정이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의 적용 범위에 관한 합의’의 성격이 강한데도 독도 주변 해역에는 배타적 경제수역을 주장하지 않아 결국 독도에 대한 주권적 관할권 포기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반대하는 측은 현행 어업협정은 어업문제에 국한돼 있어 국제법상 독도의 영유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현실적으로 어획량도 한국이 일본보다 월등히 많아 이득을 보고 있기 때문에 개정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찬성/독도 영유권 훼손 바로 잡아야▼

정부는 한일어업협정이 독도의 영유권 문제와는 관계가 없고 양국간 어업질서를 조율하는데 성공했다고 강변하고 있다. 정부는 ‘어업문제와 영유권 문제는 어업협정에서 잘 분리돼 있으며’ ‘쓸데없이 독도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국익에 보탬이 될 것이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국제법 이론상 명백한 오류를 내포하고 있으며, 주권국가로서 영토를 상실하게 할 수 있는 잘못된 정책이다.

우선 어업협정은 어업에 관한 것만을 합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실제 어업에 관한 중요한 문제들은 한일어업공동위원회 등 실무협의에 위임돼 있고 한일 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 범위에 관한 구체적이고 중대한 합의가 이 협정의 골자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이 협정은 어업에 관한 합의라기보다는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의 적용 범위에 관한 합의’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 잠정적 조치 수역인 이른바 ‘중간수역’을 합의하기 위해 한국 영토인 독도로부터는 전속적 관할 범위로 합의돼 있는 35해리를 적용하지 않았다. ‘독도에서는 배타적 경제수역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한국 정부의 은밀한 방침은 법적 요건이 극히 모호한 유엔 해양법 협약 제121조 3항을 해석하는 국제법적 해석의 현대적 추세와 맞지 않고, 독도에 부두시설과 어민 숙소 등을 축조하고 등대를 운용하고 있는 현실적 상황을 무시한 것이므로 결국 주권적 관할권의 포기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국내법 체제와 달리 국제법적으로 영유권은 당사국과 관계없는 별도의 권위 주체가 확정적으로 이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 주권적 관할수역인 EEZ를 한국이 독도로부터 포기함으로써 성립된 한일어업협정상의 중간수역 설정은 한국의 독도에 대한 영유권의 배타성을 훼손하게 된다는 것은 국제법적으로 너무나 자명한 이치이다.

대부분의 국내 국제법학자들은 이 명백한 국제법상의 이치를 간과하고, 한일어업협정이 독도 영유권 문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자명한 국제법적인 당위가 무책임한 다수결 원칙으로 무시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가장 시급한 것은 한일어업협정과 관련해 독도에 대한 한국 정부의 영토정책이 시정돼야 한다는 점이다. 독도문제에 관한 사회의 관심과 대응자세에 대한 반성이 차제에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싶다. 독도문제는 일본이 연루된 다른 도서의 영유권 분쟁들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문제이다.

명백하고 당연한 한국의 영토에 대해 일본은 군국주의적 우월감으로 수백년 전부터 한국의 자존심을 유린해 왔다. 더 이상 우리 자신의 나태와 우매함이 인접국의 부당한 영유권 주장을 조장하는 불행을 자초하지 말아야 한다. 전쟁이든 테러든 국가간의 충돌은 증오심이 원인이며, 이러한 증오심은 침략자나 테러분자에게만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경우 피해자 자신의 어리석음과 나태에도 원인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김영구(한국해양대 교수·국제법)

▼반대/현실적 이득없고 분쟁만 초래▼

한일어업협정에 대한 오해는 한국의 독도영유권이 훼손되었다는 것과 어업이익이 침해되었다는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협정에 반대하는 측은 그러한 오해를 근거해 내년 1월 22일 이후 즉각 현행 협정의 종료를 일본 정부에 통고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관계 현실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정확한 국제법 지식만 있으면 이는 잘못된 주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현행 어업협정은 어업문제에만 국한된 국가간 조약으로 도서의 영유권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는 협정의 전문과 제15조 배제 조항에 명시돼 있다. 또한 어업협정은 한일 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적용되는데, 국제법상 EEZ는 영해를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한국의 독도영유권 및 영해가 훼손된 것은 아니다. 동해 중간수역의 법적 지위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지만, 설령 공동어업수역적 성격을 인정하더라도 그로 인해 독도의 법적 지위가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이는 2001년 3월 21일 선고된 헌법재판소의 어업협정에 관한 헌법소원 결정에서도 확인된 것이다.

어업에서도 한국의 어획량이 일본의 어획량보다 많다. 작년의 경우, 일본 EEZ에서의 한국의 조업량은 3만t이었지만 한국 EEZ에서의 일본의 조업량은 7000t에 불과했다. 올 9월까지는 한국의 조업량이 일본의 7배나 되는데, 이러한 격차는 앞으로 더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현행 협정에 의해 독도의 영유권이 훼손되지 않았고 어업이익이 극대화되어 있다면 이를 굳이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조약이나 협정은 국가간의 합의이므로 일방적인 주장만으로는 성립하지 않는다. 만약 협정이 파기되어 무협정 상태가 된다면 한국에는 득보다 실이 많게 될 것이다.

무협정 상태는 양국의 관할권 충돌을 가져오고, 심각한 어업분쟁 및 어민의 손실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어업인지원법에 의한 어민 피해보상도 법적 근거를 잃게 될 것이며 자칫하면 독도를 분쟁지역으로 만들 수도 있다.

오히려 지금부터는 독도를 한국측 수역에 넣기 위한 동해의 경계획정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1996년부터 4차에 걸쳐 한일 양국은 경계획정 협상을 벌였지만 진전이 없는 상태이다. 따라서 독도에 대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의 대외적 타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정부는 경계획정 협상에서 독도의 영유권이 결코 협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제주도 남부 수역에서도 대륙붕 공동개발구역과 현행 중간 수역의 관계를 정립해 유리한 경계획정을 이끌어내야 한다.

협정의 개정을 주장할 경우에는 납득할 수 있는 대안을 국민에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대안 없는 비판보다 쉬운 일은 없다. 맹목적 국수주의자들의 카타르시스라는 명분을 위해 독도의 현실적 영유라는 실리를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창위(대전대 교수·국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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