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심판의 이름으로 유니폼을 입을 자격이 없는…

  • 입력 2001년 6월 29일 14시 06분


K-League 정규 시즌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대전의 초반 돌풍을 대견하고도 흐믓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필자는 어제 수원 경기를 직접 가서 보려고 굳게 마음 먹었으나, 잠깐 낮에 후추 주방에 들러서 읽었던 후추 게시판의 한 대전 시티즌 팬의 감동적인 글과 '주전 선수 2명 출장 예상'에 그만 꼬랑지를 내리고 말았다. 그리곤 필자의 머리 속에도 '냄비' 마크가 모락모락 떠오르기도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귀가해서 TV를 켠 순간, 수원:대전의 경기가 후반 5분 정도를 남겨 둔 시점이었다. 스코어 2:2... 어웨이 경기에서 패배를 예상하고 있었는데 동점 상황을 확인하고 대전의 '독종 축구'가 제대로 힘을 받는 듯 싶었다. 그리곤 이미 대다수의 축구 팬들이 잘 알고 있는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했다.

'상황 파악을 못했던' 일부 흥분한 대전 써포터즈들이 그라운드로 튀어 나왔고 경기 진행 요원 및 경찰, 급기야 대전 이태호 감독까지 투입되어 팬들을 진정시켰고, 경기는 그런 상황 속에서 종료되고 말았다. 필자는 그 광경을 TV로 시청하면서, 그리고 계속 되는 리플레이를 보면서... 단 한 마디 밖에 떠 오르지 않았다.

'K-League 개판 5분 전'...

광분한 써포터즈를 두둔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그들의 행동은 결코 정당화 될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어제 주심을 본 왕종국 심판의 실수 역시 써포터즈의 난동 만큼이나 치욕적이고 수준 이하였다. 프로 축구 출범 몇 년째인가?? '핸들링 골'로 우승 팀의 향방이 바뀐 사건으로도 모자라서 한창 힘이 붙은 약체 팀의 상승세, 그리고 팬들의 관심의 불씨에 그런 식으로 찬물을 끼얹어야 직성이 풀리는지...

필자는 그라운드에 없었기 때문에 주심이 졸리의 레드 카드 (퇴장 명령)을 다시 옐로우 카드로 번복하는 모습까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레드 카드 제시 후, 말도 잘 안 통하는 졸리의 손 동작으로 '1번이다' 라고 항의한 모습, 그 후에 주심 역시 검지를 내밀며 '아, 1번이냐?'며 반문하던 모습, 그리고 곧 바로 경기를 속행시키려고 뛰어나가던 주심의 모습… 그게 화면에 잡힌 전부였다. 주심이 과연 몇 발자국 뛰어 나간 후에, 옐로우 카드로 정정했다면 할 말 없다. 하지만, 그렇게 확연하게 정정 사실을 표시했다면 경기 중계를 맡았던 서기원-곽성호 팀이 경기 끝날 때까지 입에 거품을 물며 지적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왜? 그들은 운동장에 있었으니까...

주심이 선수의 경고 누적을 착각하는 사실도 석연치 않다. 심판이 경기 내내 메모 도구는 괜히 달고 뛰나? '잠깐 미쳐서' 착각했다고 치자. 그 중요한 순간에... '마지막 한 방'을 놓고 차려는 순간에... 대전의 핵심 수비수 한명을 퇴장 시키는 결정적인 순간에... 그 어떤 이유에서든 '미적지근하고 불분명한' 심판의 언행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당장 9월부터 시행된다는 복표 사업은 또 어떤가? 어제 같은 주심의 모호한 행동으로 수십, 수백 만원이 허공에 날라 간다면... 그땐 써포터즈 난동의 문제를 초월하게 될 것이다. 건달들이 그라운드를 장악하지 말라는 법 있겠는가?

어제 그라운드에 뛰어든 일부 써포터즈의 '유니폼을 벗기려면' 심판의 유니폼도 마땅히 벗겨야 한다. 그래야 K-League가 산다. 일부 팬들의 입에서 '야... 프로 연맹 심판한테 너무 가혹한 거 아냐?'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뭔가 변화하려는 모습, 말 그대로 '얄짤 없다'는 모습도 이젠 좀 보여줄 때가 되었다. '심판의 판정은 최종적', '심판의 권한은 절대적'... 이런 규정 해석으로 다시 한번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어가기엔 팬들은 그동안 너무 오래 기다려 왔다. 너무나도 어렵게 모인 팬들의 관심이 이런 식으로 외면되어선 국내 리그 활성화고 월드컵 성공 개최고 아무런 희망도 의미도 없어진다. 그 어떤 조직보다도 진보를 앞장서고 개혁을 표방해 온 연맹의 용단을 기대한다.

추신 : 필자의 입장에서 대전 이태호 감독의 행동을 논하기에 몹시도 조심스럽지만, 어제 그가 보여준 모습은 대전 시티즌 구단의 미래를 밝게 해 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인기 감독' 1명이 구단을 장기적으로 변화시키기엔 역부족이지만, 그동안 우리 축구 팬들은 같은 상황에서 선수들 벤치로 불러 들이고 '경기 몰수패'를 마치 '장렬한 자존심 세우기'처럼 선택했던 선배 감독들의 모습을 얼마나 자주 봐 왔던가... 그 상황에서 냉정함을 잃지 않고 경기를 일단 끝낸 점 하나 만으로도 이태호 감독과 대전 시티즌 구단은 '절반의 성공'을 거둔 셈이라고 본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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