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리포트]"당만 빼고 모두…" 기간산업 '바꿔'열풍

  • 입력 2001년 3월 7일 18시 48분


《“살아남을 수 있다면 당(黨)만 빼고 다 바꾼다.”

중국을 대표하는 초대형 주요 기간산업체들의 구조조정이 혹독하게 진행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가입을 앞두고 불가피한 생존전략이다.

상하이(上海)에서 남서쪽으로 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 반 가량 달린 뒤 해안쪽으로 접어들면 여의도보다 넓은 100여만평 부지에 빼곡히 들어선 67개 생산라인이 눈에 들어온다. 중국의 대표적 중화학업체 ‘중국석화 상하이석유화공(中國石化 上海石油化工)’이다.

본부 건물 바로 뒤의 에틸렌공장. 직원들은 쉬는 시간에도 기계를 닦고 조이며 먼지를 떨어내고 있었다. 간혹 설비 매뉴얼을 들고 4,5명씩 토론을 벌이기도 한다. 시간만 때우면 월급에 각종 복지까지 보장되던 과거와는 판이한 풍경이다. 해고 명령서 한 장으로 졸지에 실직자가 되는 피도, 눈물도 없는 구조조정을 겪으며 깨달은 생존전략이다.》

이 회사의 탕웨이중(唐偉忠) 자본시장책획(資本市長策劃)부장은 “기업은 이윤창출을 위해 존재한다. 지난 10년간 WTO가입에 대비해 오직 경쟁력 강화만을 목표로 삼았고 그 노력은 지금도 계속중”이라고 말했다.

우선 생산성이 낮은 사업부문을 분사(分社)해 6만3000여명의 직원을 3만5000여명으로 줄였다. 돈 안되는 것은 모두 포기한다는 전략이었다. 회사가 운영하던 초중고교와 부속병원을 지방정부로 넘겼고, 자녀 학자금 및 주택구입 지원도 없앴다. 보험료 지원도 절반으로 줄였다. 직원들의 반발은 급여인상으로 무마했다.

‘부족한 것은 돈을 싸 가지고 가서라도 배운다’는 각오 아래 영국석유(BP), 아람코, 더치셸 등 세계적 석유기업에 직원들을 수시로 파견해 선진기술을 익혔다. 덕분에 에틸렌옥사이드 등의 정제는 세계 수준으로 도약했고 생산성은 연평균 40% 이상 솟구쳤다. 93년 중국기업 최초로 뉴욕증권시장에 상장했고, 중앙정부가 흔쾌히 동의하는 눈치는 아니지만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민영화도 검토중이다.

이처럼 상하이를 중심으로 포진한 철강 석유화학 조선 등 기간산업체들은 요즘 전대미문의 구조조정 회오리에 휩싸여 있다. 중국정부가 WTO가입 협상을 지연시키며 번 10여년의 시간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글 싣는 순서▼
1. 총성없는 전쟁
2. "나를 더 이상 중국인이라 부르지 마라"
3. 피말리는 자발적 구조조정
4. 강요된 현지화:"내 돈은 내돈,네 돈도 내돈"
5. 발화하는 주식시장:'미래의 노다지'인가
6. 실리콘 밸리도 두려워하는 폭발 직전의 IT산업
7. 아시아 물류의 중심지로 거듭나는 상하이

특히 주목할 대목은 이들이 경영의 투명성과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앞다퉈 도입중인 서구식 회계제도.

중국 최대의 철강업체로 포항제철의 강력한 경쟁자인 상하이바오강(上海寶鋼)은 대대적 구조조정의 첫 조치로 96년부터 세계 최대 회계법인인 프라이스&쿠퍼스로부터 회계감사를 받고 있다. 모전(莫臻) 기업문화부장은 “경쟁력 강화는 기업의 투명성에서 시작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특히 대우그룹 등 한국의 예가 좋은 교훈을 주었다는 것.

그밖에도 상장돼 있거나 상장을 추진중인 대부분 대형기업들이 외국 회계법인과 감사 계약을 맺고 있다.

그런가 하면 중국의 대표적 조선사인 장난(江南)조선에서는 새로 건조하는 선박의 모델 선정은 기술연구소가, 해외수주 및 마케팅은 해외영업담당 자회사가 각각 맡고 본사 최고경영진은 사업조정 등 큰 윤곽만 그린다. 신속한 의사결정과 경영의 효율성을 위해서다.

장창(張强)부사장은 “큰 기업체일수록 경영진의 판단이 독단으로 흐를 위험이 크다”면서 “보다 합리적이고 신속한 결정을 위해서는 조직의 슬림화와 업종의 수직계열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1인경영 체제가 얼마나 위험한지 아시아 금융위기때 주변국가들을 통해 간접 경험했다는 것.

이렇게 노도처럼 휘몰아치는 구조조정은 시민들의 가치관도 바꿔놓고 있다.

상하이석유의 폴리에틸렌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셴보(沈波·38)는 “퇴근 후 라디오, 텔레비전 등을 통해 영어공부를 하고 있다. 남에게 뒤지지 않으려면 자기계발을 할 수밖에 없고 실직에도 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외국어학원, 야간대학 등에 다니는 직원도 수두룩하며 중견간부 이상은 경영학석사(MBA)과정 수료가 필수적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이같은 ‘몰아붙이기식 구조조정’ ‘피눈물도 없는 경영합리화’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상하이 당기관지 해방일보는 최근 사설을 통해 “중국은 미국이 아니다”며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판도 없이 미국식 구조조정을 추종하는 것은 실업과 범죄 증가 등 심각한 사회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범죄없기로 유명했던 상하이에서 강도 절도 등이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실직자들의 생계형 범죄도 최소한 30%는 된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빈부격차의 확대, 젊은 층의 취업난, 그리고 정부에 대한 불만 등을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격렬한 구조조정기의 중국’이 안고 있는 고민이라는 얘기다.

▼주룽지총리 "구조조정 멈출수 없다"▼

주룽지(朱鎔基) 중국총리는 5일 제9기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에서 “구조조정 없이는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며 현재의 구조조정 기조를 계속 밀고나갈 계획임을 밝혔다. 이와 함께 앞으로 5년간 기존의 8%대 성장률을 7%대로 낮추는 한편 도시지역 실업률을 5% 안팎으로 억제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구조조정이 반드시 계속돼야 할 과제이기는 하지만 잇따른 기업도산과 실업자 양산 등의 부작용에 정부가 신속하고도 적절히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시사하는 것. 실제 샤강(下崗·정리휴직)중인 국영기업 근로자가 600여만명이나 되며 이들은 평균 3년 이상씩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실업률도 90년대 초까지도 사회주의 특성상 완전고용을 자랑했으나 구조조정이 시작되면서 매년 증가, 지난해에는 3.1%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영국의 BBC는 올해 세계무역기구(WTO)가입이 마무리되면 앞으로 5년간 8000여만명의 추가 실직자가 발생, 실업률이 급상승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작년 기준으로 도시거주자 1인당 연평균 가처분소득 785달러, 농촌 281달러라는 통계에서 알 수 있듯이 점점 벌어지는 도농간 소득격차, 대도시를 중심으로 급증하는 위조품 판매 및 탈세, 외화 암거래와 밀수 등 구조조정에 따른 그늘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경제개혁의 성패를 가르는 길이다.

이와관련 주총리는 “WTO가입에 따른 불가피한 구조조정으로 많은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나 증권시장 등 자본시장 육성과 벤처기업 지원 및 국영기업 민영화, 사회간접자본시설 확충을 통해 경제토대를 공고히 구축, 부작용을 최소화하겠다”고 밝혔다.

△특별취재반

반병희(기획취재팀) 이승헌 기자(기획취재팀) 김두영기자(금융부) 이종환 베이징특파원

<협찬>미래에셋증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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