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서태지 공연, 4500명 청중 매료시킨 150분

  • 입력 2000년 12월 24일 18시 42분


지난 23일 서태지의 전국투어 첫날 공연이 열린 서울 등촌동 88체육관을 찾았다. 3000여명의 서태지 마니아들은 공연 시작 몇 시간 전부터 모여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부분 반팔 티셔츠에 간편한 차림으로 한바탕 잔치를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서울공연 5회는 물론 지방공연 표까지예매를 했다는 한 열성 팬은 "태지 오빠를 4년 7개월이나 기다린 만큼 원 없이 놀아보겠다"며 즐거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공연은 오후 6시부터 입장이 시작돼 예정시간보다 20여분이 늦은 7시20분께 언더그라운드 밴드들의 오프닝 무대로 시작했다.

독특한 포즈와 기괴한 목소리가 인상적인 '레이니 선', 현진영의 '현진영 고 진영 고'를 핌프 록 풍으로 편곡한 '닥터코어 911', 그리고 현란한 랩을 선보인 힙합 그룹 'CB Mass'가 공연장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오후 8시15분, 드디어 서태지의 본 공연이 시작됐다. 무대 전면에 감옥을 연상시키는 무대와 TV 조형물, 좌우 중앙에 대형 스피커가 한 눈에 들어왔다. 철창문을 열고 무대 중앙으로 나온 서태지는 무대 양쪽에 설치된 멀티큐브에서 성수대교 참사, 5.18 민주항쟁, 대규모 시위 등 자료 영상이 나오는 가운데 첫 곡 '대경성'을 열창했다. '탱크'에 이어 '오렌지'를 부를 때는 객원 랩퍼 우진원이 참여했고 앨범과 달리 사이키델릭한 분위기로 편곡해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아이들의 눈으로'를 부를 때는 3000여명의 관객들이 입장시 나눠준 라이터로 불을 켜 서태지의 열창에 호응하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밖에 서태지는 '환상 속의 그대'를 부르며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을 회상했는가 하면, '프리스타일'을 부를 때는 김종서가 등장해 객석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프리스타일'을 끝으로 "안녕"을 외치며 무대에서 사라진 서태지는 앙코르 요청이 계속되자 다시 등장해 '록 앤 롤 댄스' '너에게'를 부르며 2시간30분에 이르는 콘서트를 마감했다.

이번 공연은 멀티큐브와 다양한 무대 장치를 이용해 시각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데도 신경을 쓴 점이 돋보였다. '울트라 맨이야'를 부를 때는 "영웅은 없어. 이미 죽은 지 오래다. 바로 이날의 영웅은... 바로 너야"라는 자막으로 관객들의 환호를 이끌어냈고, 'ㄱ나니'에서는 아버지가 딸에게 폭행을 가하는 충격적인 영상을 선보였다.

또한'시대유감'을 핌프 록 버전으로 노래하던 도중 "서태지 핌프 록 표절" "신비주의"라는 문구가 선명한 <연예 스포츠>라는 대형 현수막을 찢는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그 외에 'ㄱ나니' 중간에 무대 아래에서 대형 날개가 올라온다거나 무대 끝에 뿔이 3개가 달린 악마를 연상시키는 조형물을 등장시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서태지는 이 자리에서 "그 동안 공연을 많이 했지만 이번의 경우 다시 태어난 느낌"이라며 "좋은 음악으로 행복을 나눌 수 있어 기쁘고 앞으로도 태지의 나라를 만들어보자"고 말했다.

콘서트 도중 몇몇 관객들이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다 실신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으나 안전요원의 응급 처치로 큰 사고 없이 공연이 진행됐다.

황태훈 <동아닷컴 기자>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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