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리뷰]<키다리 아저씨들의 행방>

  • 입력 2000년 12월 6일 11시 03분


4살 때 버려진 뒤 고아원에서 성장한 소년 카스가에게는 키다리 아저씨가 있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치르자마자 고아원에서 자립할 것을 선언한 카스가는 키다리 아저씨를 찾아 나선다. 어린 시절부터 매달 한 통의 편지와 후원금을 보내주던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자신을 돕고 있는지 알기 위해다.

카스가는 자신에게 편지를 써보내던 나츠키를 만나게 되고, 키다리 아저씨가 한 명이 아니라 다섯 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속 시원하게 사실을 말해주지 않는 나츠키는 자꾸만 뭔가 숨기려는 듯 하다. 우여곡절 끝에 카스가는 나츠키와 그의 의붓아들이었던 야스히로와 동거생활을 하게 되고, <키다리 아저씨들의 행방>을 쫓는 여정을 시작한다.

이마 이치코(今 市子)의 <키다리 아저씨들의 행방>은 일견 고아 소년의 후원자 찾기 과정을 그린 평범한 드라마 같지만 미스테리 추리물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다섯 명의 키다리 아저씨가 어째서 카스가를 돕고 있으며, 그들은 카스가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 하는 문제를 풀기 위한 카스가의 추적은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자신과 관계가 있는 한 사람이라도 찾아내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하는 카스가의 절박함은 이야기 전개의 동기와 개연성에 힘을 실어준다.

장난스러우면서도 애처로운 귀신 이야기 <백귀야행>으로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작가 이마 이치코의 만화들은 시종일관 담담하고, 따사로우며 재치가 있다. 그녀가 만들어내는 캐릭터들은 빼어나게 예쁘거나 화려하게 표현되지 않아도 충분히 우아하고 아름답다. 작가가 캐릭터 하나하나와 스토리 전체에 생명력을 불어 넣기 때문이다.

<키다리...>에는 또 다른 작품 <어른의 문제>처럼 다수의 게이들이 등장해 눈길을 끈다. 그들은 결코 비정상적인 성적 취향을 가진 변태나, 성애에만 몰두하는 비상식적인 인물로 묘사되지 않는 자연스러운 인간들이다. 그것은 고아나 게이가 불완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려는 작가의 의도일 것이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지닌 부자나 이성애자가 더 완전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메시지인 셈이다.

카스가는 내심 진 웹스터의 소설 <키다리 아저씨>의 주디 같은 해피엔딩을 꿈꾸고 있었는지 모른다. 고아라는 존재의 외로움에서 벗어나 가족과 함께하는 평안하고 행복한 나날이 키다리 아저씨라는 존재 뒤에 숨어 있기를. 기억조차 희미한 어머니가 혹여 나타난다면, 마지못해 용서하는 척하며 그 그리운 품에 안길 수 있기를. 키다리 아저씨들의 행방과 함께 카스가에게 찾아온 결말이 과연 '행복'일지 판단하는 것은 믈론 읽는 이의 몫이다.

김지혜 <동아닷컴 객원기자> lemonjam@now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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