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현장21]선생님 석방을 위한 여고생들의 외침

  • 입력 2000년 9월 9일 17시 35분


“늘 자신보다 이 나라를,민족을 먼저 생각하라 하셨습니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고 했을 때 정말 기뻐 하셨습니다. 통일이 될 수도 있겠다며 함박웃음을 지으셨습니다.그런 선생님이 지금 교단에 안 계시는 사실이 억울합니다. 너무 억울해 가슴이 미어집니다”
(이화외고 홈페이지)

8일 '박교사 석방촉구 결의대회' 동영상 보기

이화 여자외국어 고등학교 학생들이 국가정보원과 국가보안법을 상대로 전면전에 나섰다.국보법 위반 혐의로 국정원에 연행된 과학선생님의 석방을 위한 투쟁을 시작한 것.

학교 홈페이지 게시판에 글 올리기로 시작해 언론사, 청와대, 국정원에 항의의 글을 올리기 등 인터넷 상의 운동으로 확대된 뒤 이제는 전교생이 참가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 정도로 가열되고 있다.

여기에 '교사 불법연행'에 항의하는 전교조와 국보법 폐지 운동을 벌이고 있는 시민단체들까지 가세, 여학생들과 시민단체가 연대하는 조직적인 운동으로 변모하고 있다.

▼사건개요▼

이화외고 지구과학교사 박정훈씨는 개학을 이틀 앞둔 8월23일 오후 5시30분 경기도 고양시 일산 자신의 집에서 국정원 수사관 9명에 의해 연행됐다.

혐의는 박교사가 민혁당 조직원으로 활동하며 고등학생들에게 주체사상을 가르쳤다는 것.

박교사 부인 유영순씨에 의하면 수사관들은 연행 당시 영장을 보여주지도 않았고 연행이유를 설명해 주지도 않았다고 한다.

국정원으로 잡혀간 박교사는 17일간 단식투쟁과 함께 묵비권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지난 8일 검찰로 송치됐다.

▼이화외고 학생들의 인터넷 투쟁▼

25일 학교가 개학하고 박교사의 빈자리를 알게된 학생들은 술렁이기 시작했다.이날 학생들은 박교사가 출근하지 않은데 대해 의문을 가졌지만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아 사건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26일 학생들은 비로소 언론을 통해 박교사가 국정원에 연행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선생님 연행도 믿을 수 없는 사실이었지만 혐의가 바로 '자신들에게 주체사상을 가르쳤다는 것이란 사실을 안 학생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이날 이화외고 홈페이지 게시판(http://www.ewha-gfh.ed.seoul.kr)에는 "박정훈 선생님이 왜?" "정말 억울해요" "주체사상이라니 말도 안된다" "우리도 무언가를 해야합니다" "박정훈 선생님을 돌려주세요" 등의 수십건의 글들이 폭주했고 현재 9일까지 이와 관련한 1000여개의 글이 올라와 있다.

이화외고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보내는 메세지

학생들은 학교 홈페이지 뿐 아니라 국정원, 청와대 홈페이지, 전교조 게시판 등에 '박교사 연행'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재학생·졸업생이 한데 뭉쳐 인터넷 곳곳에 '박교사 석방촉구 게시판'을 만들고 언론에 '억울함'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인터넷 밖으로, 학교 밖으로▼

인터넷상에서 박교사 사건이 어느 정도 공론화되자 학생들은 선생님 석방을 위한 실질적 활동에 참여코자 전교조 등이 주최하는 '박교사 및 민혁당 사건 관련자 석방촉구' 집회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지난 2일 명동성당에서 있었던 집회에는 재학생 10여명 정도가 참가했다.

학생들의 당시 집회참여 열기는 뜨거웠지만 아이들의 안전을 고려한 학교측의 만류로 많은 학생들이 참가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학교측은 이날 집회가 안전하게 치뤄지자 교내방송을 통해 '집회만류'에 대해 사과했다고 한다.

2일 집회에 참가하지 못한 학생들은 8일 집회에 꼭 참가할 것을 다짐했고 실제로 8일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명동성당 앞에서 열린 ‘박교사 석방촉구 집회’에 학생들 500여명이 대거 참가했다.

이날 집회에서는 전교조 선생님들과 박교사 부인 유씨 등의 발표, 박교사 사진 슬라이드 상영, 촛불의식, 고려대 노래패의 공연 등이 펼쳐졌다.

이날 반팔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스승의 은혜'를 한목소리로 부르는 등 두시간 내내 격앙된 모습이었다.

특히 수능이 얼마남지 않은 고3학생들이 참가해 '선생님 석방'을 향한 학생들의 뜨거운 의지를 보여줬다.

집회 다음날인 9일 이화외고 홈페이지에는 학생들이 8일 집회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다음 집회를 기약하는 등 학생들의 열기는 가라앉을 줄 모르고 있다.

▼각계의 움직임▼

‘소위 민족민주혁명당 조직사건 진상규명과 공안탄압저지 대책위원회’와 전교조 등 시민단체들은 국정원 앞에서 연일 집회를 갖고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국정원이 민혁당 사건 관련자를 연행·수사하는 과정에서 불법연행과 인권유린 행위가 자행됐다”며 국정원 책임자 처벌과 연행자 석방을 촉구하고 있다.

한편 민주당 임종석 한나라당 김원웅 의원 등 6명은 7일 이러한 시민단체들의 주장과 관련, 정확한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질문서를 국정원장에게 보냈다.

▼향후 계획▼

이화외고 학생들은 시민단체 집회에 참가하고 인터넷에 꾸준히 항의글을 올리는 한편, 자체적으로 교내집회를 가질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교조와 청소년공동체 '희망'은 민혁당공대위와 함께 집회를 갖고 서명운동을 통해 청와대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지속적으로 박교사 복귀를 위한 투쟁을 벌일 예정이다.

8일 집회에서 박교사 부인 유씨는 "남편이 예상보다 일찍 검찰로 송치됐지만 빨리 석방되리라고 기대하진 않는다"며 "집회에서 학생들이 보여준 선생님에 대한 뜨거운 애정이 결코 헛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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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자료▼
민혁당 공대위 활동자료
국정원에 제출한 국회의원들의 질의서

이희정·오세린/동아닷컴기자 oh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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