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유럽영화인 대담]『反할리우드 공동전선 구축』

  • 입력 1999년 5월 20일 19시 23분


「커다란 늑대 앞에서 겁먹은 양」

프랑스의 전 문화부장관 쟈크 랑이 최근 르몽드지에 실은 기고문에서 할리우드영화의 영향력 확장앞에 속무무책인 유럽영화를 비유한 말이다.

미국의 스크린쿼터(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 축소압력으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한국영화도 ‘늑대앞의 양’인 상황은 유럽과 마찬가지다. ‘양’이 선택해야 할 생존의 방법은 무엇일까.

칸 국제영화제 집행위원회의 초청으로 프랑스 칸을 방문중인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과 유럽영화진흥기구(European Film Promotion)의 클라우디아 란스버거 회장이 만나 이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97년 2월 베를린에서 창설된 EFP는 유럽 16개국 19개 기관이 참여한 각 국 영화진흥기구의 연합체. 유럽영화의 해외진출 지원을 담당하는 기구다.

△김〓한국에서는 최근 미국의 스크린쿼터 축소 압력때문에 영화인들이 똘똘 뭉쳐 시위에 나선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 영화시장에서 할리우드 영화의 영향력은 점점 커져 지난해의 경우 한국에서 상영된 영화 3백5편가운데 2백13편이 할리우드 영화였습니다.

△란스버거〓지금 유럽영화도 할리우드 영화와 전쟁중입니다. 유럽연합(EU)에서 스크린쿼터는 주로 TV에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TV의 스크린쿼터는 영화뿐아니라 유럽내에서 제작된 드라마 등 모든 영상물에 대해 적용됩니다. 과다한 미국 영화의 유입은 문화의 정체성을 심각하게 훼손하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김〓스크린쿼터가 있건 없건 관람자가 다양한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려면 우선 자국 영화가 발전해야 합니다. 유럽에서는 영상산업에 대한 국가의 지원제도가 영화의 부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란스버거〓다양한 영화지원방법이 있죠. 특히 EU에는 유럽내 3개국 이상이 영화를 공동제작할 경우 제작비를 지원해주는 ‘뉴 이미지 미디어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전통적으로 영화제작이 예술분야에 속한 일로 간주되어 왔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이 많았습니다. 이 바람에 감독들은 소비자를 고려하지 않고 자기만족적인 영화만 만드는 사치를 누려온 측면이 있어요. 반면 할리우드는 지나치게 상업적이긴 하지만 소비자를 먼저 생각하며 영화를 만들기 때문에 정부의 지원없이도 세계적으로 성공했습니다.

△김〓90년대 후반부터 젊은 감독들이 새로운 경향의 작품들을 선보여 한국영화의 수준을 높혀 놨습니다. 이는 최근 유럽 영화계의 경향과도 맥을 같이 하는 것입니다. 유럽과 한국의 젊은 감독들의 새로운 영화가 각각 상대국에 소개되는 교류가 더욱 빈번해져야 합니다.

△란스버거〓‘1백20%’ 동의합니다. 지난해 부산영화제에 갔을 때 유럽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유머와 감각, 분위기에서 유럽관객과 똑같이 반응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한국 젊은 감독들의 영화가 유럽에 와도 비슷한 반응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김〓유럽의 배급업자들이 한국과 아시아 영화의 프로젝트에 합작, 재정지원을 할 가능성이 얼마나 있다고 보십니까.

△란스버거〓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선 영화의 줄거리가 양 대륙에서 모두 이해가능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시도가 반복되고 경제적으로도 이득이 있다는 것이 입증되면 아시아 영화에 투자할 유럽의 개인 투자자들도 더 많이 나타나리라 기대합니다.

△김〓EFP는 97년이후 계속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했습니다. 부산영화제집행위와 EFP가 아시아 영화와 유럽영화의 긴밀한 협력의 중추적 역할을 맡았으면 합니다.

△란스버거〓교류의 씨를 뿌렸으니 앞으로 점점 더 풍성해지리라 기대합니다. 부산영화제를 통해 유럽영화가 아시아에 싹을 틔울 수있는 계기가 마련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대담자 프로필◆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문화체육부차관 영화진흥공사사장 예술의전당사장 공연윤리위원회위원장 등을 거쳐 96년부터 부산국제영화제집행위원장을 맡아왔다. 로테르담영화제 심사위원장, 싱가포르 후쿠오카 하와이 인도영화제 심사위원 등을 맡았다.

□클라우디아 란스버거 유럽영화진흥기구 회장

네덜란드의 영화 해외배급을 지원하는 기관 ‘홀랜드’의 회장으로 97년 EFP가 EU산하 단체로 창립될 때부터 EFP회장을 맡았다. EFP가 협력하는 국제영화제및 영화시장은 칸 베를린 토론토 부산영화제와 미국의 아메리칸필름마켓(AFMA)등 5군데이다.

〈칸〓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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