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조경란/11년만의 영어공부

  • 입력 1999년 2월 7일 19시 29분


꼭 십일년만에 다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수업 첫날, 영어 강사가 나에게 “당신은 왜 영어 공부를 시작했는가”라고 물었다. 나는 “기회는 항상 준비하는 자에게만 온다. 다시 어떤 기회가 온다면 놓치고 싶지 않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에게도 그다지 명료한 대답은 아니었다. 교복입은 학생부터 중년의 사람들까지 대답은 저마다 달랐다. 유학을 가기 위해, 또는 외국여행을 하기 위해서, 영화를 보기 위해서, 비지니스 때문에….

같은 클래스에 있는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면서부터 나는 아주 흥미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영어를 통해 얼마쯤 그 사람의 성격이 드러난다는 것이었다.

이를테면 다른 사람의 말은 아주 잘 알아들으면서 자신의 상태는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 다른 사람의 말은 알아듣지 못하면서 자신에 관한 말만 할 줄 아는 사람, 남의 말을 알아듣지도 자신을 표현하지도 못하는 사람, 남의 말도 잘 알아듣고 자신에 대해서도 잘 표현하는 사람. 그렇게 네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그런 발견은 영어를 공부하는 것 이외에 얻는 또다른 즐거움이었다. 고백컨대, 나는 상대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오로지 나에 관한 것들만 표현하려는 유형에 속했다. 그러니까 영어공부를 하면서 단지 영어만이 아닌 그동안 잘 보이지 않았던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나는 차츰 깨닫게 되었다. 이제 ‘영어’는 더이상 개인의 허영이나 장기, 교양의 수준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세계화 공간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또하나의 생존의 무기에 가까운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지금 영어를 둘러싼 거대한 담론들, 혹은 영어공용어에 관한 거창한 문제들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서툰 ‘소설가의 눈’으로 본, 영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의 진지함이 이젠 결코 가볍거나 낯설게만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나는 또 생각한다. 나는 왜 영어공부를 시작했는가, 하고.

조경란(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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