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사이언스 ⑪]할리우드영화 주인공이 이기는 이유

  • 입력 1998년 4월 15일 07시 27분


할리우드가 만든 SF 영화, 액션 영화, 서부 영화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인공이 죽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깨어지지 않는 불문율은 ‘해피 엔딩의 나라’ 할리우드에서만 통하는 법칙이다.

주인공은 끝까지 살아남아 악당들을 모두 쳐부순다. 도대체 그 이유가 뭘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과학분야에서 이 문제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 하나가 있다.

20세기초는 고전물리학의 껍데기를 뚫고 새로운 양자물리학이 태동하던 시기였다. 그 ‘반란’의 중심지는 덴마크의 코펜하겐에 자리잡은 이론물리학연구소였다. 그곳에서 닐스 보어를 중심으로 하이젠베르크나 페르미같은 젊은 과학자들은 ‘미시세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인 양자물리학을 만들기 위해 밤낮으로 연구했다.

어느날 코펜하겐의 젊은 물리학자들은 저녁 식사 후 서부영화 한 편을 다같이 보게 됐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그들은 토론을 벌이게 되었다. 그것은 ‘왜 주인공은 언제나 악당들을 물리치고 이기는가’하는 문제였다. 그들은 이 황당한 문제를 풀기 위해 장난기 어린 ‘가설’ 하나를 세웠다.

‘의식적인 기습보다 무의식적인 반응의 속도가 더 빠르다.’

이 재미있는 가설을 검증해 보기 위해 그들은 ‘과학자답게’ 그 자리에서 실험을 해보기로 결정했다. 시가를 멋지게 피우며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이는 주인공역은 보어가 맡고 호시탐탐 주인공을 해치우기 위해 기습을 노리는 악당 역을 가모브가 맡았다.

결투 장소는 북유럽의 황량한 바람이 불어오는 보어의 연구실! 소품은 권총 대신 물총 한 자루씩!

결과는 주인공 보어의 승리! 역시 주인공은 현실에서도 이겼다. 이 실험을 통해 그들은 ‘자유의지는 결코 반사신경을 앞지를 수 없다’는 엄청난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그리고 깨달았을 것이다. 죽이려고 하는 자가 먼저 죽는다는 인생의 진리를….

정재승(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박사과정·jsjeong@sensor.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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