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 사이언스④]투명인간은 은행을 털 수 없다

  • 입력 1998년 2월 4일 07시 45분


누구나 한 번쯤 꿈꾸어 보는 ‘투명인간’. 문학은 물론 영화에서도 오래 전부터 숱하게 다루어진 소재다. 한국에서도 이영하가 주연하고 김기충 감독이 연출한 영화 ‘투명인간’이 87년 발표된 적이 있다.

과학적으로 따져보면 투명인간처럼 불쌍한 사람이 없다. 우선 투명인간은 장님일 수밖에 없다. 인간의 시력에 필수적인 요소는 수정체 망막 시신경 등 세 가지. 외부 사물의 모습은 렌즈 역할을 하는 수정체를 거쳐 망막에 영상으로 맺힌다. 이 영상 자료를 시신경이 분석하여 두뇌로 전달하면 비로소 ‘보이게’ 된다. 이 가운데 수정체와 시신경은 투명해도 상관이 없지만 망막은 절대로 투명해선 안된다. 외부 사물의 모습이 영상으로 맺혀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끼니를 잇는 것도 수월하지 않다. 음식물은 신체의 일부가 아니므로 소화 과정을 거쳐 완전히 배설되기 전까지는 항상 몸 안에 남아 있다. 만약 투명한 모습으로 외출을 하고 싶다면 먼저 위장이 깨끗이 비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게다가 방광에서는 수시로 소변이 생성되므로 이것도 그때그때 몸 밖으로 배출해야 한다.

설령 은행을 털려고 마음먹었다 해도 쉬운 일은 아니다. 몸은 보이지 않지만 체온을 숨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비밀금고에 몰래 들어가더라도 신체에서 발산되는 열선은 여지없이 적외선 감지기에 걸린다. 또 완벽하게 투명해지려면 몸에 달라붙는 미세한 먼지들을 계속 털어내야 한다. 투명인간으로 남기 위한 조건은 이처럼 까다롭기 그지 없다.

‘투명인간’이라는 개념이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1897년에 영국작가 H G 웰스가 같은 제목의 소설을 발표하면서였다. 이 소설은 1933년에 영화로 만들어져 세간의 큰 주목을 받았다. 그 뒤 투명인간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영화는 30여편이 넘게 발표됐다.

앞서 언급한 과학적 측면을 비교적 적절하게 살린 영화는 1992년에 존 카펜터 감독이 연출한 ‘Memoirs Of An Invisible Man(비디오출시명 투명인간의 사랑)’이 있다.

박상준 (SF영화평론가·cosmo@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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