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구칼럼]제왕적 대통령시대의 마감

  • 입력 1997년 5월 30일 19시 59분


국민앞에 두번씩이나 머리숙여 사죄해야 하는 대통령의 참담한 모습을 보면서 그리스 신화 속의 이카로스를 생각한다. 새의 깃털을 모아 삼실과 초로 이어붙여 만든 커다란 날개를 어깨에 달고 이카로스는 하늘로 날아 오른다. 그러나 잘 날 수 있다는 자만심으로 의기양양해진 그는 아버지의 충고를 잊고 너무 높이 치솟는다. 그러자 태양열에 초가 녹아 내리면서 날개가 산산조각나는 바람에 그는 순식간에 망망대해로 추락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고 만다. ▼ 「봉사하는 자리」 망각 ▼ 金泳三(김영삼)대통령의 추락은 스스로 문민대통령이라면서 문민의 참 뜻을 바로 이해하거나 실천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다. 말그대로 문민시대는 국민이 바로 주인인 것이며 대통령은 단지 자신을 뽑아준 국민과 나라를 위해 봉사하는 자리일 뿐이다. 이 원칙을 벗어나면 국민은 등을 돌리게 된다는 사실을 그는 얕보았다. 김영삼후보에게 국민이 표를 던진 것은 그를 국가경영의 유능한 적격자로 보았기 때문은 아니다. 우리 손으로 문민세상을 열어보자는 염원이 실려 있었다. 거기에 보답하기 위해서 그는 겸손했어야 옳았다. 취임초 90%를 오르내리는 인기도에 자만하거나 의기양양해서 독선 독주할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과거 야당투사시절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던 전임 대통령들과 다를 바 없이 제왕적(帝王的) 권력을 즐겼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이 무소불위(無所不爲)면 반드시 빠지는 함정들이 있다. 김대통령도 예외는 아니었고 그것은 곧바로 실정(失政)으로 이어졌다. 특히 아들의 비리와 국정농단이 대선자금의 원죄를 여론의 도마위로 끌어내면서 자신의 존립기반인 도덕성을 하루아침에 함몰시켰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여론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그것도 우왕좌왕 언제나 한 발짝씩 뒤따라가는 바람에 호미로 막을 일을 불도저로도 못막는 형국이 돼버렸다. 민심이라는 이름의 바다는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침몰시키기도 한다. 진작 여론의 비판에 귀기울였던들 두번씩이나 사과담화를 읽는 수모는 겪지 않았을 것이다. 취임초부터 듣기싫은 소리에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고 그것이 결국 그의 귀를 막았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민주화투쟁 때는 국민적 영웅의 한사람이었을지 몰라도 일단 권좌에 오르면 비판적 여론의 대상이 된다는 민주정치의 당연한 메커니즘을 그는 몰랐던 것이다.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우리가 얻은 결론은 한사람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左之右之)하던 제왕적 대통령시대는 끝났다는 것이다. 그만큼 국민의 의식수준은 높아져 있다. 권력의 위세앞에 귀엣말로 수군거리는 게 고작이던 옛날의 그 국민이 아니다. 우리는 너무 오래 비정상적인 것들에 익숙해져왔기에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나 위정자가 국민의 눈치를 살피는 것은 민주국가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이다. 현직 대통령을 드러내놓고 비판할 수 있는 것도 민주주의가 이행기를 거쳐 이젠 성숙기로 접어들고 있음을 말해준다. ▼ 옛날 그 국민들이 아니다 ▼ 국민이 원하는 지도자상은 더욱 분명해졌다. 나라의 공복(公僕)으로서 성실하고 정직하고 투명하게 처신해 달라는 것이다. 국민의 그런 뜻을 거역하고는 누구도 온전할 수가 없다. 이 나라는 김영삼씨 부자(父子)의 나라가 아니다. 金大中(김대중) 金鍾泌(김종필)씨의 나라도 아니고 몇몇 야심적인 대선주자들만의 나라도 아니다. 국가 구성원 모두의 나라라는 인식이 뿌리내리고 있다. 정치인들은 이점을 바로 보아야 한다. 앞으로 누가 대통령이 되든 다시 제왕적 권력을 휘두른다면 그는 또 한사람의 불행한 대통령이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김영삼대통령의 영광과 추락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이다. 남중구(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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