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데뷔시절]디스코텍 DJ 부업 밉보여 한동안 '벤치신세'

  • 입력 2001년 5월 23일 19시 00분


어린 시절부터 코미디언을 꿈꿔왔던 나는 1984년 'KBS 개그콘테스트'를 통해 데뷔했다. 실은 고교를 졸업한 전년도에 MBC 라디오에서 개최한 '개그 콘테스트'에 당선됐지만 TV출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 말을 바꿔 탄 것이었다.

얼마동안 <젊음의 행진>과 <유머1번지>에 단역으로만 얼굴을 내밀던 나는 1985년 KBS에서 새로 신설한 개그프로그램 <비디오자키>의 단독 MC로 발탁됐다. 신인급 개그우먼으로선 파격적인 일이었다. 그 일로 나는 일급호텔 디스코텍 DJ자리를 제의받으면서 3개월치 월급까지 선금으로 받았다.

하지만 그 후 나는 당시 최고 인기 개그프로그램이었던 <유머1번지>에는 얼굴을 내밀 수 없었다. 담당인 김웅래 PD에게 신인개그맨이 다른 프로그램이나 기웃거리며 돈만 밝힌다고 나쁜 인상을 준 탓이었다.

당시엔 <유머1번지>에 출연 못하면 개그맨축에도 끼워주지 않던 때였다. <유머1번지>의 회의가 끝나면 수십명의 개그맨에게 배역이 주어지는데 언제나 나만 건너뛰었다. 그래도 나는 3년 여간 아이디어 회의와 녹화 현장에 빠지지 않았다.

집에 가서 혼자 눈물을 흘릴지언정 악착같이 자리를 지켰다. 내겐 자존심보다는 개그맨으로 성공하겠다는 꿈이 더 소중했기 때문이었다. 녹화 현장에선 동료들이 대사를 외우기 바쁠 동안, 나는 선배들의 연기를 관찰하며 공부할 수 있지 않느냐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런 노력 덕분이었는지 86년 나는 <비디오자키>가 새롭게 개편된 <쇼 비디오자키>에서 ‘쓰리랑 부부’코너를 맡으며 인기를 얻게 됐다.

그러자 김 PD의 태도도 바뀌었다. 어느 날 <유머1번지> 야외촬영 분에서 누군가 펑크를 냈고 내가 대역을 맡게 됐다. 촬영을 마치고 갑자기 비가 쏟아져 한 차를 타고 가는 길에 김 PD는 그동안 자신이 너무 심했다며 사과의 말을 건넸고, 우린 그동안 서로를 보고 인사도 안하고 지나치던 오랜 불화를 마감했다.

‘억울하면 성공하라’ 식의 말이 아니다. 요즘 후배들을 보면 스스로 일어서려는 ‘헝그리 정신’이 부족한 것 같아 튼튼히 내실을 다지면 언젠가 기회가 온다는 말을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