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모나리자…’ 그대, 아직도 현모양처를 꿈꾸는가

  • 입력 2004년 3월 9일 17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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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마노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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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당 2000만달러(약 240억원)의 개런티를 받는 할리우드 특급 여배우로서 37세는 참 고민스러운 나이일 것이다. ‘섹시 스타’의 봉우리를 막 내려와 배우로서 ‘제2막’을 열어줄 캐릭터를 잡아야 할 시기이기 때문이다.

19일 개봉 예정인 ‘모나리자 스마일’(사진)에서 37세의 줄리아 로버츠는 ‘행동가’가 되기로 작정한 것 같다. 이 영화에서 여성해방을 외치는 대학 강사 잡슨은 환경오염으로 희생된 주민들의 권리를 되찾아주는 억척여성을 그린 그의 전작 ‘에린 브로코비치’의 연장선상에 있는 캐릭터다. 그런데 그가 한 가지를 잊은 듯하다. ‘에린 브로코비치’가 빛났던 이유는 그가 단지 행동가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캐릭터가 생생하게 꿈틀거렸기 때문이란 사실을.

1950년대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의 자유분방한 분위기에서 공부한 캐서린 잡슨은 동부 뉴잉글랜드의 웰슬리 여대에 미술사 교수로 부임한다. 결혼과 정조, 출산을 일생의 목표로 삼는 베티 등 여학생들은 야생화 같은 잡슨에게 냉담하다. 잡슨은 여성의 사회 진출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스스로도 자유연애를 즐기지만 학생과 학교의 거센 반발에 부닥친다. 잡슨은 자유로운 사고를 보여준 잭슨 폴록의 ‘발칙한’ 그림을 보여주면서 학생들의 닫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있겠는가만,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을 연출한 마이크 뉴웰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익숙한 이야기 구조나 이미지에 기댄 흔적이 역력하다. 마음의 자유를 주장하는 선생이 보수적인 학생 집단을 해방시킨다는 내용은 ‘죽은 시인의 사회’와 유사하다. ‘야생과 자유’를 무기로 보수성 깃든 상류사회를 향해 돌진한다는 점에선 줄리아 로버츠의 출세작 ‘귀여운 여인’과도 닮아있다.

로버츠는 잡슨이란 ‘뜨거운’ 캐릭터를 아주 ‘차갑게’ 연기해 버림으로써, 잡슨의 (당시로서) 진보적인 언행은 여성해방을 표시하기보다 되레 그 주제의식 속에 파묻혀 질식해 버렸다. 영화는 메시지가 주는 지루함을 보완하기 위해 고풍스러운 인사법과 댄스 파티장, 벽지와 침대보를 수놓은 꽃문양, 로맨틱한 팝 넘버 등을 동원하면서 1950년대란 시대적 배경을 판타지적 공간으로 차용하려고 시도한다.

“모나리자는 웃고 있지만, 그게 정말 행복해서 웃는지 어떻게 아느냐”는 학생 베티의 마지막 절규가 웅변하듯 ‘모나리자 스마일’이란 제목은 여성 억압적인 1950년대를 꼬집는 반어적인 말이다. 하지만 여성이 결혼의 덫을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오늘날 관객에겐 ‘모나리자의 미소’보다 더 화석화된 메시지란 사실을 이 영화는 모르는 걸까. 12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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