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붙어야 산다'…샴쌍둥이 형제 "붙어서 떴다"

  • 입력 2004년 2월 24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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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붙어야 산다’의 밥(왼쪽)과 월트 형제는 허리가 붙은 샴쌍둥이지만 성격이 천양지차다. 동생 밥이 무대 공포증에 떠는데 반해 할리우드 스타를 꿈꾸는 형 월트는 바람둥이다. 사랑과 성공의 교차로에서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교통정리될까. 사진제공 20세기폭스코리아
영화 ‘붙어야 산다’의 밥(왼쪽)과 월트 형제는 허리가 붙은 샴쌍둥이지만 성격이 천양지차다. 동생 밥이 무대 공포증에 떠는데 반해 할리우드 스타를 꿈꾸는 형 월트는 바람둥이다. 사랑과 성공의 교차로에서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교통정리될까. 사진제공 20세기폭스코리아
패럴리 형제가 달라졌다. ‘덤 앤 더머’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등의 영화에서 각종 장애와 못 생긴 외모에 대한 차가운 조롱, 화장실 유머로 ‘악명’을 떨친 형제 감독. 그들이 이젠 깨달은 걸까. 재미와 감동도 ‘붙어야 산다’는 사실을 말이다.

‘붙어야 산다’(원제 Stuck on You)는 유치한 우리말 제목 때문에 오히려 손해를 보는 영화다. 하지만 이만큼 딱 떨어지는 제목도 사실 없다.

내성적인 동생 밥(맷 데이먼)과 할리우드 스타의 꿈을 키우는 바람둥이 형 월트(그레그 키니어)는 허리가 붙은 샴쌍둥이. ‘번개 버거’점의 주인인 이들은 환상적인 콤비 플레이를 과시하며 번개보다 빠른 속도로 햄버거를 만들어 내는 지역사회의 유명인사다. 어느 날 형 월트가 할리우드로 가겠다고 주장하면서 이들의 평온했던 삶은 격랑을 맞는다. 형은 인기스타 셰어에게 발탁되면서 스타덤에 오르고, 동생 밥은 인터넷으로 만난 한 여성과 사랑에 빠진다. 찰떡궁합이었던 두 사람은 점차 서로를 불편해 한다. 형 월트는 결국 분리수술을 받자고 동생에게 제의한다.


패럴리 형제는 전 작품 ‘내겐 너무 가벼운 그녀’에서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 뚱뚱함에 대한 편견을 극단까지 코믹하게 밀어붙임으로써 오히려 그 편견을 극복하는 너그러운 면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이 이번엔 한발 더 나아가 “장애는 장점”이라고 말하려는 것 같다.

‘붙어야 산다’에는 기분 좋은 ‘관계의 전복(顚覆)’이 있다. 샴쌍둥이는 신체적 핸디캡 ‘덕분’에 아이스하키 수문장으로, 권투선수로, 야구 투수로, 미식축구 선수로, 골프 선수로 명성을 날린다. 심지어 한명이 섹스를 하는 동안 나머지 한명이 컴퓨터에 몰두하는 ‘멀티태스킹’마저 보여준다. 이들은 이른바 ‘정상인’들을 신나게 물리치고 조롱한다. 팔등신 미인조차 그들을 보고 “이거 어디서 붙인 거니?”라며 부러워할 만큼.

이 영화는 웃음을 위해 에피소드들을 여기저기서 끌어와 오려붙인 패럴리 형제의 전작들과는 다르다. 웃음, 슬픔, 감동의 서로 다른 감정들이 샴쌍둥이라는 하나의 코드에서 주도면밀하게 풀려나온다. “너랑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 않다”며 외면하려 하지만, ‘정말로’ 등을 돌리지 못하는 이들 쌍둥이의 모습은 웃기고 또 슬프다.

샴쌍둥이가 벌이는 사건을 두고 리얼리티를 논하는 것은 이 영화의 본질을 한참 벗어나 있는 것이다. 이 영화가 쌍둥이를 다루는 태도는 판타지로 가득 찬 우화에 가깝다. 정반대 성향을 가졌지만 ‘붙어야 사는’ 이들은 어둠과 밝음의 상반된 자아가 혼재된 인간의 내면을 꼬집는 즐거운 메타포(은유)가 아닐 수 없다.

상상력과 더불어 이 영화를 떠받치는 또 다른 기둥은 생명력 있는 캐릭터다. 몸은 ‘붙어’ 있지만, 두 사람의 캐릭터는 자유롭게 춤춘다. 코미디에서조차 부끄러움과 진정성이 뒤섞인 얼굴을 잃지 않는 맷 데이먼과,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에서 얼굴을 내비친 그레그 키니어는 쳐다보고 웃다보면 어느새 울게 되는 캐릭터의 마법을 보여준다. ‘영계 밝힘증’ 여인으로 깜짝 출연하는 셰어와 뮤지컬 스타로 등장하는 메릴 스트립의 연기도 인상적.

영화의 마지막, 형 월트가 꿈에 그리던 배우 메릴 스트립과 함께 서는 무대가 뮤지컬 ‘보니 앤 클라이드’인 점은 곱씹어볼 만하다. ‘보니 앤 클라이드’는 사랑으로 뭉친 남녀가 비장한 최후를 함께 맞는 내용. 영화에서 분리수술을 마친 쌍둥이의 마지막은 그러나 뮤지컬처럼 비장하진 않다. 단지 평생을 상대에게 기대어온 탓에 혼자선 단 1m도 똑바로 걸을 수 없을 뿐.

27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 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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