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읽기]SBS '기쁜 우리 토요일' 어정쩡한 포맷-억지 웃음

  • 입력 2000년 2월 28일 19시 52분


버라이어티쇼나 코미디 등 성공한 오락프로에는 시청자의 감정선을 일관되게 건드리는 그 무엇이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KBS2 TV ‘개그 콘서트’는 비록 시사적인 터치는 없더라도 따발총처럼 작열하는 콩트가 쏟아내는 폭소를 프로그램의 정체성으로 굳히면서 오락프로 하면 으레 떠오르는 소위 ‘저질 논쟁’도 그 속에 묻어 버렸다.

그런데 오랫동안 SBS의 주말 저녁 간판 오락프로 노릇을 해온 ‘기쁜 우리 토요일’(오후5·50)의 최근 방송분을 보면 “오락프로가 어쩌면 저렇게 어정쩡한 포맷으로 채워질 수 있나”는 생각이 든다.

주력 코너인 ‘MC 대격돌-우리가 한다’를 보자. 개그맨 박수홍 윤정수 등으로 이뤄진 MC 팀과 그룹 ‘쿨’의 멤버들이 종목을 정해 시합을 벌이는 것이 주 내용인데 요즘 대결 종목이라고 하는 것들이 그야말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

12일 방송의 대결종목은 ‘누가 두루마기 휴지를 빨리 풀어헤치나’였고, 19일 방송에서는 ‘누가 초밥을 많이 먹나’였다. PC통신을 중심으로 비난이 빗발치자 이를 의식한 탓인지 26일 방송분에는 영화 ‘엔트렙먼트’를 패러디해 레이저 선 빨리 통과하기로 종목을 바꿨다. 그러나 카메라는 출연자의 엉덩이에 레이저 광선이 닿는 장면을 클로즈업시키는 등 도대체 무엇으로 웃기려하는 지 알 수 없었다. 시청자의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 방송 초반 19일 방송 분 중 출연진들이 억지로 입에 초밥을 ‘쑤셔 넣는’ 화면을 내보냈으나 오히려 보기에 민망스러울 정도였다.

‘방송 사상 최초 기획’이라는 타이틀이 달린 ‘열혈! 스타고백’ 코너는 일반인이 아닌 연예인이 평소 맘에 들었던 이성 연예인에게 사랑의 감정을 고백하는 코너. 하지만 이는 바로 전날 방송되는 SBS ‘기분 좋은 밤’(밤9·50)의 코너인 ‘결혼할까요?’를 그대로 모방해 SBS 시청자들에겐 “어제 하고 오늘 또 하느냐”는 생각이 들게 했다.

‘저질 논쟁’이나 ‘공영성’ 문제가 나올 때마다 SBS 측이 들고 나오는 것은 “우리는 상업방송이라 KBS와 같은 잣대는 힘들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쁜…’의 문제점은 그런 논쟁을 넘어 제작진의 매너리즘과 이로 인한 프로그램의 정체성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승헌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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