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신문고]“백혈병 환자에 신약 처방 자유롭게 해달라” -김동욱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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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기준 들쑥날쑥… 환자 약값만 수백만원


《 불합리한 의료정책 때문에 억울한 피해를 당했습니까. 지금보다 더 나은 의료환경을 만들기 위한 제안이 있습니까. 더 확실한 건강정보를 원합니까. 이런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동아일보가 ‘건강신문고’를 만들었습니다. 북을 울리세요. 동아일보가 독자 여러분의 입이 돼 드리겠습니다. 》
▼ “이래서 문제”

김동욱 교수
김동욱 교수
만성골수성백혈병을 치료할 때 건강보험 적용 기준이 모호해 약 처방에 제한이 많다. 여러 약물을 썼다가 나중에 진료비를 환수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제한이 너무 많다. 환자의 생명이 우선 아닌가. 1세대와 2세대 항암제를 탄력적으로 처방할 수 있도록 건강보험 기준을 완화해 달라.(김동욱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

백혈병 치료제가 다양하고 국내 의료기술이 놀랄 만큼 발달했다. 환자에게 돌아가는 혜택도 그만큼 커졌으리라. 그런데도 김 교수는 불만이 많다. 동아일보의 ‘건강신문고’를 두드린 이유다.

만성골수성백혈병은 혈액암의 하나다. 국내 인구 10만 명당 한두 명꼴로 걸린다. 현재 국내 환자는 어림잡아 2000∼3000명. 천천히 진행되는 게 특징이며 어린아이보다는 성인에게 더 많이 생긴다.

김 교수는 이 병에 관해서는 세계적 권위자다. 국내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의 60%를 진료한다.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백혈병 치료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유럽백혈병네트워크(ELN)’의 패널위원으로 선정됐다.

백혈병 치료제가 출시될 때마다 김 교수가 환자 임상시험을 담당했다. 2001년 세계 최초로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1세대 표적항암제)이 나왔을 때도 그랬고 2005년 이후 이른바 ‘슈퍼글리벡’이라 불리는 2세대 표적항암제가 나왔을 때도 그랬다. 2세대 항암제로는 ‘타시그나’ ‘스프라이셀’ ‘슈펙트’가 있다.

1세대 항암제인 글리벡 치료에는 대부분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그러나 환자 상태에 따라 효과와 나타나는 부작용이 모두 다르다. 이 때문에 약물을 바꿔 가면서 처방해야 한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가령 글리벡을 사용하다 2세대 신약으로 바꾸거나 2세대 신약을 쓰다 다른 2세대 신약 또는 글리벡으로 바꿀 수 있다. 문제는 이런 경우 건강보험 혜택을 받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김 교수는 건강보험 적용 기준이 모호한 8대 사례를 제시했다.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의 치료에 쓰는 약물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기준을 분명히 해달라는 요구가 많다. 사진은 서울성모병원 백혈병 환자들이 집중치료를 받는 무균병동. 백혈병 환자들이 병마와 싸우는 곳이다. 서울성모병원 제공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의 치료에 쓰는 약물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기준을 분명히 해달라는 요구가 많다. 사진은 서울성모병원 백혈병 환자들이 집중치료를 받는 무균병동. 백혈병 환자들이 병마와 싸우는 곳이다. 서울성모병원 제공
대표적인 사례를 보자. 69세 남성 A 씨는 6개월간 글리벡 치료를 받았다. 의사는 치료효과를 높이기 위해 2세대 신약으로 바꾸려 했다. 이렇게 되면 건강보험 혜택을 못 받을 수 있다. 현재 건강보험은 ‘부작용이 생겨 약물을 바꿀 경우’로 제한한다.

물론 약물을 바꿀 수는 있지만 나중에 진료비를 강제 환수당하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이를 피하려면 의사는 글리벡 용량을 늘리는 처방밖에 내릴 수 없다. 김 교수는 “2세대 신약을 사용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이 들어가는데 치료효과는 더 떨어지는 형국”이라고 비판했다.

다음은 27세 남성 B 씨. 2세대 신약을 쓰다가 2개월 만에 부작용이 나타났다. 의사는 환자의 상태를 보고 다른 2세대 신약이나 글리벡을 쓰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는 힘들다. 2세대 치료제를 썼다가 다른 2세대 치료제나 1세대 치료제로 바꾸면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다.

2차 항암제는 글리벡 치료 효과가 없거나 약품 내성이 생긴 환자에게 ‘2차 치료제로’ 투입하려고 만든 약품이다. 글리벡보다 효과와 안전성이 뛰어나다는 점이 입증돼 2년 전부터는 바로 쓰도록 부분적으로 허용했다. 그러나 여전히 제약조건이 많다. 김 교수는 2세대 신약을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허용해달라며 두 달 전 환자들과 함께 보건복지부에 청원서를 냈다.

환자와 의사들은 보건당국이 경직됐고 안일하다고 지적한다. 의사 C 씨는 “여러 차례 민원을 제기했지만 검토하겠다는 답변만 반복한다. 과연 건강보험 혜택을 실질적으로 늘리겠다는 생각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답변 ▼

식약청에 치료법 검증 의뢰… 제약사가 효능 입증해야

김 교수를 비롯해 여러 번 제기된 민원이다. 의사와 환자가 무슨 요구를 하는지 잘 안다. 그러나 약물의 효과가 아직 충분히 입증되지 않았으니 건강보험 혜택을 무작정 늘릴 수는 없다. 제약사가 약의 효과를 입증할 임상시험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 제약사가 안일하다고 본다. 그래도 의료진과 환자의 요구가 강한 만큼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이런 요법이 의학적 근거가 있는지를 확인해달라고 요청했다. 논의 결과를 보고 건강보험 적용 여부를 검토할 생각이다. 결과가 언제 나올지는 지금 확답할 수 없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만성골수성백혈병#건강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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