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정재승 소설 ‘눈 먼 시계공’]<98>

  • 입력 2009년 5월 21일 13시 59분


[안티오페 증후군]

사례보고 #1.

2043년 8월 14일 오후 6시경, 대구에 사는 A씨가 자신의 집에서 알몸의 변사체로 발견됐다. 가사도우미 로봇이 청소를 위해 방문했다가 거실에 쓰러진 그를 발견하곤 곧바로 신고했다. 부검 결과, 사인은 '급성 과다뇌출혈'이었다. 그는 '쾌락 중추'로 널리 알려진 '측중격핵'(Nucleus Accumbens)에 마이크로 자극칩 CBS III (Neurolix, Seoul)를 삽입해 전기신호를 통해 오르가즘을 즐겨왔다. 그러나 그날은 과다 전류 공급으로 측중격핵은 물론 기저핵(Basal Ganglia)과 근처 변연계(Limbic area)까지 모두 손상당했으며 측두엽 출혈이 심했던 것이다.

과연 인간이 로봇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인간이라는 '유기체'(carbon-based life)가 로봇이라는 '기계체'(silicon-based life)와 정서적 교감을 나눌 수 있을까?

이 전우주적 질문에 대한 전지구적 해답을 찾기 위해 과학자들이 동물실험에 착수한 것은 21세기 초이다. 브뤼셀 자유대학 생물학자 호세 할로이 교수 연구팀은 바퀴벌레와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바퀴벌레 로봇 '인스봇'(Insbot, insect 와 robot의 합성어)을 개발하고 그 연구결과를 2007년 11월 16일자 '사이언스'지에 발표했다.

할로이 교수가 만든 가로, 세로 3cm 크기의 인스봇은 바퀴벌레를 유혹하는 페로몬을 방출하는 로봇이다. 어둡고 조용한 곳을 좋아하기로 유명한 바퀴벌레들이 '밝고 사람들이 많은 곳'이라도 인스봇에게 모여들었다는 실험결과는 당시 과학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바퀴벌레를 퇴치하기 위해 시도된 이 연구는 '동물과 로봇의 정서적 교감'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더 큰 영감을 불어넣었다.

2013년 서울, S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제이슨 진 교수는 로봇쥐(Micromouse)와 실제 쥐가 사랑에 빠지도록 만드는 실험에 성공했다. 그는 쥐의 '쾌락 중추'인 '안쪽앞뇌다발'(medial forebrain bundle)에 전류자극을 가할 수 있는 칩을 삽입한 후, 같은 크기의 로봇쥐와 동거시켰다. 이 칩이 하는 일은 로봇쥐가 쥐 근처로 가까이 오면 '쾌락 중추'를 자극시켜 쥐 뇌 속에 분비된 도파민으로 인해 쥐가 오르가즘을 느끼도록 만드는 것이다. 로봇쥐가 가까이 올 때마다 쾌락을 느낀 쥐는 자극을 가하지 않더라도 로봇쥐와 떨어져 있으려 하지 않았다. 로봇쥐에게 먹이를 가져다주거나 몸을 비비는 행위 등이 관찰됐다.

특히 쥐가 보는 앞에서 로봇쥐의 머리를 분리하고 몸을 해체하자, 해체된 로봇쥐 앞에서 꼼짝도 않고 머물며 슬퍼하다가 4일 만에 죽는 과정이 유투브에 공개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동물이 로봇과 사랑에 빠질 수 있음을 보여준 최초의 실험적 사례였다.

인간의 뇌 속 '쾌락 중추'에 칩을 삽입해 언제 어느 때나 오르가즘을 느끼도록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 왔으나, 법적 규제로 인해 실제로 인간에게 적용된 사례는 공식적으론 없다. 파킨슨병 환자의 손 떨림을 치료하기 위해 삽입된 '기저핵 자극 칩'이 측중격핵도 전기적으로 자극해 '오르가즘을 동반하기도 한다'는 신경학적 보고만이 있을 뿐이다.

특별시 외곽에서 불법으로 쾌락 중추 자극 수술이 시술되고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2043년 8월 A씨의 사례보고는 이 불법 시술이 실제로 널리 행해져 왔다는 것을 알린 최초의 사회적 사건이었다. A씨의 변사체와 함께 발견된 로봇을 해체 조사한 결과, A씨가 로봇을 애무해주면 로봇이 A씨의 쾌락중추 자극칩에 전류를 흐르게 해 오르가즘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으로 드러났다.

지인들에 따르면, 인간관계에 서툰 A씨는 평소 집에서 자신의 로봇과 애무를 즐기며 성적 관계를 맺어왔다. 사망 당일에는 6시간 40분 동안 애무를 즐기다가 과잉 전류 공급으로 인한 뇌출혈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가 로봇과 알몸으로 죽어있는 사진이 당시 압구정동 OO일보 홀로그램 전광판에 모자이크 처리 없이 게시됐다가 '언론의 선정성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A씨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에는 A씨가 자신의 로봇에게 보낸 연애편지 165통과 동영상 3편, 써드 라이프(Third Life)에서 구입한 6천 7백만원 상당의 '로봇용 보석' 구입 영수증 등이 발견됐다. 그는 자신의 로봇을 21세기 초 전설적인 가수 '이효리'라고 불렀다.

사례보고 #2

2045년 5월 22일, 인천에 사는 B양은 자신이 다니던 대학교 스포츠 콤플렉스 13층 옥상에서 자신의 로봇 '매그넘 5'와 함께 뛰어내려 자살했다. 그녀는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아무런 유서도 남기지 않은 채 투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살 원인은 전혀 밝혀진 바 없으며, 유족들도 더 이상 이 사건이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것을 꺼려한 탓에 지방 일간지에 단신으로만 처리되고 사라졌다.

명문대 법대를 다니던 전도유망한 B양이 왜 투신자살을 했을까? 3년 후, 그녀의 자살 원인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이 사건은 다시 한 번 세간의 입방아에 올랐다.

사건은 투신 3일 전 그녀의 생일파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평소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인 B양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2045년 5월 19일 룸메이트와 그의 친구들은 옷장과 부엌에 숨어 '깜짝 파티'를 마련하고 그녀를 기다렸다.

B양이 집에 도착한 시각은 밤 11시 15분 경이다. 그녀는 집에 오자마자 황급히 화장실로 달려갔다. 바지와 팬티를 입지 않은 채 나신으로 나온 B양은 자신의 클리토리스에 꿀을 바르고 '매그넘 5'로 하여금 그것을 핥아먹도록 시켰다. 매우 능숙한 솜씨로.

B양에게 깜짝 파티를 열어주기 위해 온 친구들은 옷장과 부엌에서 차마 나오지 못하고, 숨을 죽인 채 이 광경을 지켜봐야만 했다. 옷장 안에는 B양의 남동생과 엄마도 함께 있었다. 애무가 점점 격렬해지고 로봇 역시 흥분한 듯 괴성과 함께 혀의 움직임이 빨라지자, 옷장 속 친구들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와 각자의 집으로 가버렸다. 아무도 그녀에게 말을 건넬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로부터 3일 후, B양은 자신이 5년간 너무도 아꼈던 '매그넘 5'와 함께 투신자살했다.

로봇과 함께 자위행위를 즐기는 것 역시 잘 알려진 '은밀한 비밀'이다. 정신과 의사들은 로봇을 훈련시켜 자신의 국부를 핥게 하거나 비비게 함으로써 성적 만족을 추구하는 것을 '주물숭배'(fetishism)의 하나로 간주한다. 동물과의 성관계를 통해 성적 만족을 느끼는 '수간증'(zoophilia)과 나란히, 로봇과의 성관계를 통해 만족을 느끼고 로봇과의 관계에 집착하는 현대인들을 '로보필리아'(robophilia)로 간주하기도 한다. 감정을 갖지 못하도록 규제된 로봇에게 '정서적 교감'을 바라는 로보홀릭을 일종의 질병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사회적 동물이다. 때문에, '사회적 관계 맺기'에 서툰 인간들은 정상적인 생활에 어려움을 겪으며, 로봇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이 '지배적 힘'(control power)을 갖기를 원한다. 정신과 의사들은 이런 현대인의 증세를 '안티오페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상반신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하반신은 염소'인 사티로스와 성관계를 맺은 것으로 알려진 그리스 신화의 '안티오페'에서 이름을 딴 이 증후군은 감정을 갖지 못하도록 규제된 로봇과의 정서적 교감에 집작하는 현대인들의 증세를 모두 일컫는다.

2047년 8월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에 실린 연세대 의대 신경정신과 김재진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382,546명의 일반인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안티오페 증후군을 경험한 적이 있는 사람들이 무려 21%에 이르렀으며, 그 증세가 심각한 사람도 5.6%에 달했다. '쾌락중추 자극칩을 통해 로봇과 성관계를 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무려 12.3%가 '그렇다'고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간은 로봇과의 관계를 통해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전우주적 스케일의 사회적 동물'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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