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정재승 소설 ‘눈 먼 시계공’]<93>

  • 입력 2009년 5월 14일 14시 21분


제 19장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

영혼이 머무는 방

내 머리에 타인의 뇌를 이식하면, 나는 과연 여전히 '나'로 남을 수 있을까? 내가 나인 이유는 나의 뇌 때문일까, 나의 몸 때문일까? 내가 이 질문을 내 뇌로 답할 수 있기나 한 걸까?

엉뚱한 질문을 처음 던진 사람은 데카르트지만, 이것을 증명해 보기로 마음먹은 사람은 중국의 어느 의사였다. 1959년, 그는 개의 머리를 잘라 다른 개의 목 위에 얹는 실험을 감행했고, '한 동안 개가 살아있었다'고 중국 정부는 발표했다. 과연 개의 영혼도 옮겨갔을까? 중국 정부는 이 문제에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1963년, 신경외과 의사인 로버트 화이트 박사가 똑같은 실험을 원숭이에게 적용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원숭이의 머리를 잘라 다른 원숭이의 목 위에 얹고 붙이는 수술을 시도한 것이다. 화이트 박사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 원숭이는 한 동안 냄새도 맡고, 소리에 반응하기도 했으며, 맛을 보거나 주변을 둘러보는 감각능력이 살아있었다. 그러나 수술 장면을 실제로 본 사람은 없었다.

1998년 4월 28일, 로버트 화이트 박사는 퍼포먼스 수술을 감행했다. 원숭이 두 마리의 머리를 통째로 바꾸는 수술 과정을 직접 비디오로 촬영을 한 후, 한 방송사를 통해 전 세계에 내보낸 것이다. 이 동영상에는 머리를 이식받은 붉은털 원숭이가 의식을 갖고 눈을 깜빡인다.

화이트 박사팀의 1998년 실험은 매우 정교했다. 몸과 머리의 혈관을 서로 연결하고, 금속 죔쇠를 척추와 머리에 부착하여 머리를 몸에 고정시킨 후 인공튜브를 이용해 기관과 식도를 붙였다. 머리와 목 사이의 신경을 남김없이 이을 수는 없었지만, 주요한 기관과 혈관은 최대한 수술을 통해 연결했다. 건강한 몸을 이식 받은 원숭이는 6시간 후 의식을 회복했으며, 시각과 청각은 정상적인 반응을 보였다. 척수가 연결되지 않아서 새로 얻은 몸을 움직일 순 없었지만.

사실 원숭이 머리이식 수술의 기원은 18세기 프랑스 혁명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인 의사 조세프 이그나스 기요틴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고안한 사형기구 단두대는, 교수대나 할복처럼 고통스런 사형방식을 대체하기 위한 지극히 인간적인 살인도구로 개발되었다. '즉사'를 돕는 것이 배려인 시절이었다.

공포정치가 시작되면서, 목을 자르면 과연 죄수가 즉사하는가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이 등장했다. 단두대에서 벌어진 일화들에 관한 프랑스의 역사학자인 앙드레 수비랑의 자세한 기록에 의하면, 머리가 잘린 죄수의 입술이 움직이고 눈이 깜빡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머리가 잘린 후에도 순환하던 혈액이 뇌 대사에 필요한 산소와 영양을 공급하는 순간까지 뇌가 수 초 정도는 살 수 있다고 한다. 기요틴은 당시 외과 의사들과 학자들의 인체 연구에 불을 지폈다.

프랑스 혁명이 끝나고 30년 후,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이 출판되었다. 이 소설은 현대 외과 의학이 사실은 프랑스 혁명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시체의 신체 부위별 실험을 통해 발전했다는 끔찍한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제네바의 물리학자 빅토르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시체조각을 모아 인조인간을 만들고 전기적인 자극을 통해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이 괴물은 자신을 흉측하게 만든 박사를 원망한다. 그는 결국 충동적으로 난폭한 행동을 일삼다가 마을 사람들에 의해 최후를 맞는다. 이 와중에 프랑켄슈타인 박사 역시 괴물에게 목숨을 잃는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소설 속에서 머리이식을 최초로 시도한 문학적 외과 의사였다.

로버트 화이트 박사가 수술을 감행한 20세기만 해도 머리를 잘라 다른 몸에 붙이는 '머리 이식' 수술이 시도됐을 뿐, 두개골을 열고 뇌와 척수를 옮기는 수술은 시도할 엄두를 못 냈다. 뇌 이식 수술을 최초로 감행한 사람은 막스플랑크 연구소 신경외과 의사인 마틴 발터스. 2015년, 그는 원숭이의 두개골을 열고 꺼낸 뇌를 다른 원숭이의 두개골에 넣고 신경을 연결하는데 성공했다.

마틴 발터스 박사는 이 실험에서 또한 뇌 이식 수술을 통해 원숭이의 영혼이 옮겨갔음을 증명했다. 그는 수술 전 2주일 동안 원숭이에게 눈을 두 번 깜빡이면 주스를 주는 실험을 통해 간단한 학습을 시켰다. 학습의 결과 원숭이는 기분이 좋을 때마다 눈을 깜빡이는 버릇이 생겼다. 그런데 뇌 이식 수술을 하고 나서 새 뇌를 얻은 원숭이에게 주스를 보여주었더니, 이 원숭이가 눈을 두 번 깜빡인 것이다. 주스를 보면서 눈을 계속 깜빡이며 웃는 모습이 유투브를 통해 전 세계에 공개된 원숭이는 7시간 만에 죽었다.

'장기 이식'은 역사가 오랜 의료기술 중 하나다. 진시황 시절부터 장기를 이식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뇌 이식이 각별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인간이 단지 기계적, 화학적 부품들의 총체에 지나지 않으며 '나'라는 존재도 뇌의 생물학적 메커니즘의 산물인가 라는 본질적 물음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원숭이는 진정 뇌를 이식받은 것일까? '뇌 이식의 아이러니'는 여기에 있다. 두개골을 열어 뇌를 꺼낸 후 다른 몸통에 옮겨 이식했지만, 실제로 이 원숭이는 머리를 이식했다기보다는 몸통을 이식 받았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게다. '나'는 내 뇌니까.

2015년, 유투브에 올라온 마틴 발터스의 실험 과정을 본 화이트 박사는 유투브 동영상을 통해 이렇게 화답했다.

"이 실험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마음과 영혼이 양쪽 귀 사이에 존재하는 1.4kg짜리 두뇌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다. 마음과 영혼이 모두 그 속에 있다."

과학자들이 '영혼의 방'을 찾기 위해 뇌 이식 수술을 시도하는 것은 아니다. 뇌 이식은 생명연장술 중 하나다. 목을 다쳐 척수 손상으로 '사지마비'가 된 환자들이 죽는 가장 주된 이유는 장기들이 차례로 망가지기 때문이다. 그 환자가 새로운 신체를 이식 받게 된다면, 비록 사지마비 상태라 하더라도 생명을 연장할 수 있기 때문에, 척수손상을 입은 대부호들의 수명연장을 위해 뇌 이식 수술이 감행된 것이다. 화이트 박사가 1960년대 개와 고양이의 머리 이식 수술을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다.

2023년, 콜롬비아의대 신경외과 폴 아처 박사와 동료들은 줄기세포를 이용해 뇌 이식을 받은 원숭이를 석 달 이상 생존시키는데 성공했다. 머리와 척추를 연결하는 수백만 가닥의 신경다발인 척수를 자른 후 다시 잇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기존의 통념을 깬 것이다.

그는 뇌신경다발과 척수 사이에 줄기세포를 이식하였다. 수술이 아닌 세포 스스로 연결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척수와 뇌신경다발 사이의 연결이 새롭게 형성될 수 있도록 2주 동안 신경성장촉진인자(neurotrophic factors)를 함께 주자, 3주 만에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31쌍의 척수가 모두 이어지진 않았지만, 목 부위로 가는 경수 8쌍과 허리 부위로 가는 요수 5쌍, 그리고 그 아래 천수로 가는 5쌍이 무사히 연결됐다. 신경전달과 활동을 의미하는 활동전위(action potential)도 잘 측정됐다. 원숭이는 팔과 다리, 그리고 허리를 움직일 수 있었다.

2029년부터 2037년까지 8년간 다섯 차례 인간의 뇌 이식이 시도되었지만 모두 실패했다. 인간의 경우는 원숭이와는 달리 줄기세포를 분화시키는 동안 생명 유지 자체가 어렵고 원숭이에 비해 신경다발 가닥도 너무 많았다. 그 후 인간에 대한 뇌 이식 수술은 특별시연합 의회로부터 허가를 받아야만 가능했다.

특별시 외곽에서는 사람을 납치해 몸통을 이용하는 무허가 의사들이 있다는 소문이 흉흉했다. 두개골을 열고 뇌를 꺼내는 기술만은 허가받은 의사보다 탁월하다는 것이다. 그들의 뇌 적출술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척수와 뇌를 이은 환자들이 새 생명을 얻었다는 풍문은 끊이질 않았다. 덕분에 무허가 의사를 찾는 부자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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