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501…목격자(17)

  • 입력 2004년 2월 13일 19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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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 걸상에 앉아 버터와 치즈를 먹었습니다… 해는 뉘엿뉘엿 지고… 매미 울음소리가 머리 위로 쏟아졌습니다… 매앰 매앰 매앰 매앰 츠르르르… 우리 앞에는 해 저무는 길밖에 없었지만, 어쩐지 강가 돌멩이 위에 앉아 밀양강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집 생각이 날 것 같아 말은 안 했지만… 나나 춘식 선배가 고향에 안 간지 몇 년이나 되었으니… 역에는 형사들이 우글거리죠, 역에서 발각되어 기차 안에서 붙잡히면 그 대단한 이춘식 선배도 도망칠 도리가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기차를 타고 갈 수는 없고, 그렇다고 뛰어가기에는 너무 멀고… 부산에서 90리 길입니다… 그때 무슨 얘기를 했냐고요? “영양만점입니다” “맛있다” 그거 말고는 뭐가 있겠습니까… 내가 영양만점이라 그러고, 선배는 맛있다고 그러고… 암호요? 하하하하, 영양만점에 무슨 뜻을 담겠습니까? 하하하하, 말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굶주려 있었습니다. 프락치니까요… 지금은 기숙사에 있지 않습니다… 작년까지는 기숙사에서 매일 이 방 저 방 옮겨다니면서 잤죠, 하지만 사찰계가 철저하게 감시하게 되고부터는 위험해서… 이춘식 선배는 신출귀몰합니다… 내 쪽에서는 연락을 할 수가 없어요… 내가 연락책이라고요? 누가 그런 소리를? 으윽, 다리, 다리는! 다리는 제발! 으으으으윽! 아이고, 으윽! 다음주 토요일 오후… 기숙사 식당에서… 으윽, 윽, 삼사십 명이… 이춘식 선배도 옵니다… 그전에 오랜만에 달리겠다고… 으윽, 오전 중… 운동장에서… 아이고, 아이고, 내가 무슨 짓을! 이 더러운 팔자!

내 목숨 따위는 이제 필요없습니다. 이춘식의 이름을 팔았는데, 어떻게 살겠습니까. 죽여주십시오. 무슨 낯짝으로 하늘을 보겠습니까. 지금 여기서 죽여주십시오. 다만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밀양에 계시는 부모님에게는 아무 말 말아 주십시오. 동생들한테도… 마르크스의 마자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내 죽음도 알리지 마십시오, 으윽, 이 입으로 내 이름에 침을 뱉고, 으흑, 아이고… 내 이름은 아무에게도 전하지 마십시오… 부탁입니다. 나는 나를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내 이 두 손으로 나를 처형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한시도 살아 있고 싶지 않습니다… 어서, 어서요… 흐흑… 아이고오….

글 유미리

번역 김난주 그림 이즈쓰 히로유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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