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500…목격자 (16)

  • 입력 2004년 2월 12일 19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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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식 선배에 대해서 말이죠? …하지만, 올 들어서는 두 번밖에 만나지 못했습니다… 한 번은 지난봄에… 날짜까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개나리꽃이 피었을 때니까, 아마 3월 말쯤이었을 겁니다… 운동장에서 뛰고 있는데, “어이, 경암이!”하고 부르더군요. 옆을 돌아보았더니 춘식 선배가 있었습니다. 입술을 약간 비틀면서 수줍은 듯 웃는 특유의 표정으로 뛰고 있더군요. 꽤 속도를 내서 뛰고 있었는데, 배낭을 오른쪽 어깨에 이렇게 둘러메고 창가를 부르면서 같이 뛰어준 거였어요…그 노래요, 여자애들이 고무줄놀이 할 때 부르는, 그…아아, 제목이 뭐였더라…아메아메 후레후레 가아상가 자노메데 오무카이 우레시이나 핏치핏치 찻푸찻푸 란란란….

…네, 맞습니다, 춘식이나 경암이나 본명이 아닙니다. 자칫 본명을 불렀다가 적에게 정보를 흘리는 꼴이 되면 안 된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부르주아 사회에서는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고,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현재가 과거를 지배한다는 사상을 실천하기 위해서, 우선은 나 자신이 과거의 가족제도에서 벗어나 일개 프롤레타리아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두 번째요? 아아, 두 번째는… 한 달 전, 아니 이주일 전입니다… 부평동 시장 건너에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미제 물건을 파는 가게가 있잖습니까…치즈를 사려고 가게에 들어가려는데, 딱 마주쳤어요…그때 선배는 정말 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머리나 수염이나 엉망으로 자라 있고, 돈도 한 푼 없는 것 같았습니다…옷이요?…옷은, 위는 하얀 운동 셔츠에 아래는 검정 학생복을 입고 있었습니다…지금도 그런 차림인지는 알 수가 없지요…너무 홀쭉하게 야위어서 물어봤죠. 끼니는 잇고 다니느냐고요. 선배는 “대충 먹고 산다”면서 씩 웃더군요. 나는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서 가게로 뛰어 들어가 버터와 치즈를 한 통씩 샀습니다. “이건 버터고 이건 치즈인데, 하나 가지세요”라고 했더니, 선배는 버터를 골랐습니다…아니오, 아주 조금밖에 없습니다. 가게 주인에게 캔따개를 빌려서 뚜껑을 열어, 손가락으로 집어서 먹었습니다…말도 안 돼! 당신네들이 이춘식을 몰라서 그런 소리를 하는 겁니다! 후배한테 먹을 것이나 갈취하는 그런 사람이 절대 아니라고요…오히려 뭔가를 해주고 싶어지는 사람입니다…그 수줍은 듯 미소 짓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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