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60>卷七.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6년 1월 9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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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부모님을 구하고 화평을 끌어내는 일이 급해 후공을 사자로 쓰기는 하지만 왠지 마음은 어둡기 짝이 없구려. 후공이 항왕에게 해주려는 말은 바로 항왕에게 훌륭한 헌책(獻策)이 될 수도 있소. 항왕이 그대로 따르면 우리 한나라는 지금보다 훨씬 더 어려워질 수도 있으니, 그 올곧음이 참으로 과인을 위해 부리는 수단인지, 이쪽저쪽에 양다리를 걸치는 것인지 도무지 분간이 가지 않소. 틀림없이 후공은 그가 사는 나라를 평안하게 할 수도 있지만, 기울게 할 수도 있는 사람일 것이오.”

한왕은 후공이 군막을 나가기 바쁘게 장량을 보고 탄식처럼 말했다. 장량이 그런 한왕을 위로하듯 말했다.

“후공이 항왕을 달랠 수만 있다면 우리 한나라로 보아서는 어김없이 나라를 평안하게 한 사람이 됩니다. 그때는 평국군(平國君)으로 세워 그 공을 기려야 할 것입니다.”

한편 사자로 뽑힌 후공은 길을 떠나기에 앞서 상복부터 한 벌 마련했다. 그리고 그 상복에다 상장(喪杖)까지 갖추고 비틀거리는 나귀에 오른 뒤 시중꾼 하나만 딸리고 동(東)광무의 초나라 진채를 찾아갔다. 파수를 보던 초나라 군사가 그런 후공을 진문(陣門) 곁에 잡아두고 패왕에게 달려가 알렸다.

“한나라 진채에서 다시 사람이 와서 대왕께 뵙기를 청합니다.”

“한왕 유방이 보낸 사자라더냐?”

패왕이 별생각 없이 물었다. 그런데 그 대답이 괴이쩍었다.

“사자가 아니라 대왕께 문상(問喪)을 왔을 뿐이라고 합니다.”

“무어라? 문상을?”

“예. 상복을 입고 상장을 짚었는데, 그 정상(情狀)이 자못 구슬픈 데가 있습니다.”

그 말에 잠시 어리둥절해 하던 패왕이 이내 굳어진 얼굴로 좌우를 돌아보며 말했다.

“세객(說客)이 온 모양이로구나. 여봐라. 어서 군막 앞에다 큰 솥을 걸고 물을 채운 뒤 불을 지펴라. 제 놈이 괴이쩍은 복색으로 왔으니 과인도 별난 자리를 마련해 맞아야겠다.”

이윽고 상복을 갖춰 입은 후공이 패왕의 군막으로 불려 왔다. 패왕이 먼저 서슬 퍼런 어조로 물었다.

“너는 어디서 온 누구며, 무엇 때문에 과인을 찾아 왔느냐?”

“신은 산양(山陽)에서 온 후(侯) 아무개란 떠돌이 서생입니다. 오늘 특히 대왕의 장례가 가까운 걸 보고 그냥 있을 수 없어 이렇게 문상을 왔습니다.”

후공이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그렇게 대꾸했다. 패왕이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겁을 주었다.

“진중에서는 장졸의 사기를 해치는 죄가 그 어느 죄보다 크다는 것을 너도 알 것이다. 그런데 너는 불길한 상복에 상장까지 짚고 와서 요망한 소리로 우리 장졸들의 사기를 해쳤다. 하나 비록 네 말이 요망스럽다 해도 이치에 닿으면 살려주려니와, 다만 유방의 세객으로 우리 군심(軍心)을 어지럽히러 온 것일 뿐이라면 너는 저 가마솥에 삶기게 될 것이다. 말하라. 어째서 과인의 장례가 가까웠느냐?”

그러나 후공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검고 깊은 눈을 크게 부릅떠 패왕을 보다가 목소리를 가다듬어 말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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