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337)

  • 입력 2000년 1월 30일 19시 35분


영어나 독일어는 한마디도 못했지만 영태가 사전을 뒤적거리며 러시아어의 외마디 단어를 내뱉으면 발음까지 교정해주면서 곧 알아듣곤 했지요. 그네가 싸모바르 주전자에 끓는 물을 가져다 주는 덕분으로 저녁에는 간단히 컵라면을 먹곤 했어요. 물론 토냐에게도 주었는데 맵다고 눈물까지 흘리면서도 아주 하라쇼라고 그랬어요.

평원의 해 지는 모습은 장엄했습니다. 새들이 높다란 자작나무 숲 위로 깃을 찾아 날아가고 기온이 떨어지기 시작한 땅에서 퍼져 오른 뽀얀 습기가 허공에 가득차서 햇빛은 부옇게 바래어 물기에 번진 수채화의 그것처럼 태양이 벌겋게 일그러져 보여요. 땅은 물론이고 숲이며 하늘도 그렇고 우리 기차며 객실까지도 내다보는 우리의 얼굴과 옷자락도 벌겋게 물이 들어 버려요. 주위에 언덕과 고지대가 나타나면서 멀리 흰 눈이 삐죽삐죽 이빨처럼 얹힌 높은 산의 연봉들이 벌판 멀리 보였어요. 토냐가 통로를 지나다가 창 밖을 가리키며 우랄, 우랄, 하면서 외쳤어요. 우리는 그날 밤 우랄 산맥을 경계로 유럽을 작별하고 아시아로 넘어가는 길이었어요. 시베리아는 또 하나의 세계였고 위대한 대지였지요.

사흘 밤 낮을 달려서 기차는 오비 강을 건너서 노보시비르스크에 도착했어요. 시간은 저녁 여덟 시 쯤이었지요. 기차가 역 구내에서 한 시간쯤 정차했기 때문에 나는 초저녁 잠이 들었던 영태를 깨워서 바람을 쐬러 나갔어요. 승객들은 장시간 앉아서만 왔기 때문에 기차가 서기만 하면 승무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다투어 땅에 내려서 걸어 보려고 하지요. 역사 앞을 벗어나 화물이 드나드는 아래쪽 출구 앞에 작은 인파가 모여 있는 게 보였어요. 가보니까 다른 역들 보다 더 큰 노점이 벌여 있었고 우리에게 다가서며 달러를 바꾸자는 남자들도 있었구요. 훈제연어를 가득 넣은 뜨거운 빵이며 면발이 손가락만큼 굵은 국수를 넣은 닭 스프를 팔고 있어서 예전에 대전 역의 가락국수 생각이 나서 사먹었습니다.

이튿날 오후에 이르쿠츠크에 도착했는데 우리는 예정표대로 짐을 모두 가지고 그 기차에서 내려야만 했죠. 거기서 일박하고 시내와 바이칼 관광을 하고 나서 다시 기차를 갈아타야 했거든요. 앙가라 강이 내려다 보이는 인투리스트 호텔인가에 묵었는데 방에 들어서서 창문을 열자마자 붉은 노을이 가득찬 하늘과 강물과 강변의 숲이 방안에 가득 차는 것 같던 기억이 납니다. 밤에 기차를 타기 전 까지 관광버스를 타고 안내를 받으며 시내를 돌아다니고 바이칼까지 갔다 왔는데 생각나는 곳은 호텔 앞의 강변 보도 부근과 데카브리스트 기념관 정도예요. 바이칼은 바다처럼 보였고 마을은 알프스의 산동네 같았어요. 나는 버스 안에서 호수의 바람이 차갑게 불어오는 밖으로 나가기가 싫을 정도였어요.

저 사람들은 전쟁과 평화의 주인공들이었다구.

서구식 목조가옥의 회랑을 지나면서 송영태가 그렇게 말했어요. 귀족이면서 자기를 낳은 차르 체제에 최초로 반기를 든 사람들이 십이월 당이라고 하는 데카브리스트들이어요. 나폴레옹이 유럽 곳곳을 들쑤시고 다니는 동안에 공화주의가 민들레의 씨앗처럼 퍼져 나갔잖아요. 주동자 다섯은 처형 당하고 살아남은 백여명의 귀족들은 무기형을 받은 정치범으로 이 도시 근처의 벌목장이나 광산으로 끌려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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