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287)

  • 입력 1999년 12월 2일 19시 47분


장벽 쪽으로는 작은 제라늄 화분조차 내놓지 않고 있었어요. 멀리서 볼 때에는 그냥 회색일 뿐이던 벽 위에 가득한 뿜칠 낙서와 그림과 벽보들을 보았어요. 페인트로 정성스럽게 그린 그림들도 있었지요. 나는 색다른 전시회를 마주하고 있다는 감동이 생겨났지요. 꿈과 희망과 기억과 산 것들의 모든 감정 따위들을 무자비하게 덧칠해버린 시멘트 구조물 위에 꼼지락 꼼지락거리며 자신의 숨결을 불어 넣으려던 인간적인 안간힘의 흔적이 거기 있었지요. 깨어진 시멘트의 틈바귀에는 먼지가 쌓여 기적 같은 토양이 생겨나고 작은 풀꽃이 자라나 있었어요. 그때 나는 눈물이 핑 돌면서 실로 오랜만에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독일어는 아직 서툴렀지만 나는 여기에 남고 싶었죠. 점령군인 양키와 로스께를 밉살스러워 하는 이 도시의 젊은이들 분위기도 그럴 듯 했구요. 금욕적인 고장에서 갑작스레 화창하고 요사스러운 번화가로 나오기 보다는 묘지가 보이는 교회나 낡은 학교 근처로 와서 시작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도 좋을 것 같았지요.

베를린은 내가 당신을 면회 가서 먼발치에서 검은 창과 빨래만 바라보고 돌아왔을 적에 가졌던 인상처럼 잊혀진 장소였어요. 나는 끼리꼬의 그림에 나오는 인적없는 골목 같은 여기서 유폐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답니다.

동물원 역 앞의 환전소에서 누굴 만났어요. 나 보다는 두어 해 후배였는데 그림은 별로 신통치 않았지만 편견이 없고 마음이 편해서 친구들이 많은 그런 여자였지요. 졸업하고 만나본지 오래 되었는데 그네가 여기서 유학 중이었대요. 그리고 독일 사람과 결혼을 했대요. 남편은 그네 말대로 운 좋게 변호사였구요. 이름이 잘 생각이 안나네요. 가물가물 하면서도 떠오르지 않는군요. 거기 있는 동안에 한 세 번쯤 만났을까. 하여튼 그애의 유창한 독일어 덕분에 예술대의 교수와 인터뷰를 했고 자료를 챙겨서 다시 만나기로 했어요. 나는 친구들과 정희에게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해 부쳐 달라고 청했고 그동안 작업했던 것들을 한 상자 모았어요.최종 인터뷰를 하고나서 입학 허가를 받았죠. 그때만해도 베를린에는 방 사정이 좋은 편이어서 본이나 프랑크푸르트 보다 훨씬 싸고 널찍한 집을 구하기가 쉬웠습니다.

당신 서운하겠지만 나는 사실 당신과의 인연만 뺀다면 다른 건 운이 좋은 편이어요. 분데스플라츠 모퉁이에 아틀리에로 나온 집을 아주 싸게 얻을 수 있었거든요. 그곳은 중심가에서 지하털로 세 정거장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고 한 정거장도 못가서 나무와 잔디와 호수가 있는 큰 공원이 거리를 가로지르고 있었어요. 또 지하철 노선들이 만나는 곳이며 광장을 중심으로 다섯 갈래의 길이 방사형으로 뻗어나간 곳이에요. 광장의 모퉁이마다 잡화점이며 작고 이국적인 레스토랑과 생활 편의점들이 사이좋게 붙어 있었어요. 주말에는 광장에서 민속시장이 섰지요. 나는 여기서 싱싱한 야채와 과일을 샀고 집에서 만든 쿠키나 소시지며 햄도 사곤 했거든요.

내가 얻은 집은 백년이 넘은 프러시아 시대의 건물이라는데 옛날에는 공장이었다지요. 전후에 주택으로 개조하고 노동자들의 숙소로 사용했대요. 그래서 한 층의 높이가 보통 집의 이 층 높이만 해요. 건물의 입구에 트럭이 드나들만한 높고 큰 철문이 있고 거기 거주자의 이름이 적힌 명패가 방 번호대로 붙어 있고 옆에는 집집마다 버튼이 달려 있어요.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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