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267)

  • 입력 1999년 11월 9일 18시 45분


나는 우선 김밥을 먼저 집어서 우물거리며 맛을 보았다. 영등포의 일본식 붙박이 장이 많던 영단 주택이 생각난다. 나는 그제사 뒤늦게 어머니 안부를 물었다.

어머닌 잘 계셔요?

누님이 탁자 위로 고개를 숙이고 쳐들지를 않는다. 모두 말이 없다. 어머니가 아크릴 사이에서나마 면회를 하고 간 게 벌써 일년 반이 되었다. 누님이 아까보다 더욱 붉어진 눈으로 말했다.

어서…음식이나 먹어라.

좀 편찮으시다더니, 별 일은 없는 거죠?

누님이 마지못한듯 대답했다.

그냥 그러셔. 어서 먹어.

나는 볼이 미어지도록 김밥을 집어 넣었다. 다행히 아침에 관식이 나왔을 때 전날 시내에서의 화려한 식사를 생각하고는 수저가 떠지질 않아서 몇 번 대었다가 말았던 터였다. 나는 그들과 점심 시간이 넘을 때까지 무슨 이야기를 간간히 주고 받았는지 기억이 없다. 다만 무지하게 먹어댔을 뿐이다. 나중에는 숨이 가빠져서 목구멍이 무둑할 지경이었다. 그들이 일어설제 주임은 내가 계단 아래까지 배웅하는 것만은 허락했다. 누님이 먼저 내 손을 잡고 작별했다.

마음 단단히 먹어라. 밖에선 두 차례나 올림픽 한다구 법석이야. 그때가 되면 무슨 변화가 있지 않겠니?

까짓 거, 잘 지내구 있어요.

이제 자형 차례가 되었는데 과묵한 그가 모자를 쓰지않고 캡의 챙 부분을 두 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중얼거렸다.

사실은 말야…처남한테…내 할 말이 있는데. 사실은 저, 어머님이 돌아가셨어. 지난 구 월에….

돌아섰던 누님이 내친김이라고 여겼는지 한꺼번에 말했다.

척추암이셨어. 작년 겨울에 눈길에서 넘어져서 그 동안 내내 누워만 계시더니. 병원에서 할 수 없이 퇴원 하시구두 반년쯤 사시다가…우리가 산소 잘 모셔 드렸다.

나는 우두커니 서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씀 없으셨어요?

누님은 이젠 웃는 얼굴이 되었다.

너 꼭 장가 보내 주라구 신신당부 하셨어. 그래 이젠 들어 가거라, 우린 간다.

오후에 주임과 교사 두 사람 그리고 나는 처음처럼 다시 고속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향했다. 바람이 불고 하늘은 잔뜩 찌프러져 있었다. 나는 그저 무덤덤 했다. 주임은 내게 사회 참관을 하고나니 감상이 어떻드냐고 물었지만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소풍 가기 전 날이 좋은 거 아뇨?

그는 무슨 소린지 못 알아 들었겠지만 나는 어릴적부터 그랬다. 어쩐지 좋은 날이 따로 없었고 시시둥한 느낌이었다. 다만 그 직전에 가슴이 울렁거리는 설레임이 잠깐 지나갔을 뿐이었다. 소풍 날도 설날도 내 생일도 별로 신통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휴일의 정신없이 신나는 샛강에서의 고기잡이도 이튿날 특히 비 내리는 썰렁한 월요일에 학교 갈 일이 먼저 떠올라 버리던 것이다. 소풍이 끝나면 시험을 보아야 한다든가, 설이나 생일이 끝나면 남은 음식처럼 쉬지근해진 무채색의 날이 밝는다. 다시 갇혀야 할 새하얀 담장이 멀리 보이는 가로수 길에서 나는 이 짧은 여행이 나의 오랜 상처가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이 기억은 가끔 날 궂은 날이면 내 가슴을 쿡쿡 쑤셔댈 것이다.

<글: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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