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오래된 정원(243)

  • 입력 1999년 10월 12일 18시 42분


다방이 길 건너 한 두 집이 아니든데요.

여그도 개발 붐이지라. 아파트 짓제, 공장 들어오제.

그런데 나 전화 한 통화 쓰면 안될까요?

시외 전화요?

예, 서울이오.

아줌마는 의외로 선선히 말했다.

동전 바꿔 디릴게 나중에 계산하소.

그네가 손 금고를 열고 동전 한움큼을 집어서 내주었다.

두 줄인께 이천 원이요. 남으먼 돌려 주시고. 저그 공중전화 보이지라?

나는 동전을 받아 들고 전화기 앞에 가서 섰다. 누님네 아파트 단지에서 몇번 걸어 보았던 경험이 있었지만 아직도 낯설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나서 순천댁이 알려준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 조각을 들고 서있었다. 병원의 숫자를 돌리기 시작한다. 동전이 짤칵 떨어지면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병원입니다.

나는 왠지 끊길까 불안해서 동전을 몇 개 더 넣으면서 더듬거렸다.

하, 한정희…선생 좀 부탁합니다.

원장님이요, 누구시라구 전할까요?

나는 갑자기 말이 막혀서 숨을 죽이고 잠시 망설인다.

여보세요, 누구신가요?

이제 오래 끌면 전화는 끊어지리라.

저어…오 선생이라구 전해 주시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목소리가 사라지고나서 대신에 음악이 흘러 나온다. 소리 뒤편에서 저희끼리 음험한 논의라도 하고 있는 것처럼 시간이 꽤나 길게 느껴진다. 나직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윤희의 목소리와 어딘가 닮았다.

여보세요, 전화 바꿨습니다.

한정희 선생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만….

하면서 목소리는 잠시 기다렸다. 나도 기다린다. 정희는 전화 속에서도 분명히 알아들을만큼 깊은 숨을 내쉬고나서 말했다.

오 선생님이라면 혹시…오현우 선생님인가요?

네….

대답만 하고 나는 다시 할말을 잃었다. 목소리는 침착하게 이어졌다.

저는 만나 뵌 적이 없지만, 나오셨다는 소식은 신문에서 봤습니다.

그네는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고서 연이어 말했다.

언니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삼 년 전에…암으루요.

나는 같은 어조로 말했다.

알구 있습니다.

아! 편지…받으셨군요. 그 무렵에 누님 되시는 분의 학교루 보냈어요.

나와서 봤지요.

이제 한 이주 되셨지요?

네 그쯤 되었어요.

지금 어디 계세요?

갈뫼에 내려와 있습니다.

잠깐 말이 끊겼다. 나는 그네가 수화기를 손으로 막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번에는 불안해진 내가 불렀다.

여, 여보세요, 여보세요?

네에, 갈뫼에 가셨군요. 언니 떠나고나서 주욱 못가봤다가 지난 겨울에 은결이하구 있다가 왔는데….

은결이요…?

드디어 내가 도달하려고 했던 말의 시초를 잡은 셈이었다.

거기 계시면 다 아시겠지요. 지금 열 여덟, 고 삼이랍니다.

그렇군요.

하고나서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글: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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